경기도 여주시 천송동 봉미산 자락에 위치한 신륵사(神勒寺)는 신라 진평왕(眞平王) 때 원효대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해지나 확실한 근거는 없으며, 현존유물은 대부분 고려 중엽 이후의 것이 많다.
신륵사는 1376년(우왕 2년)에 나옹(懶翁) 혜근(惠勤)이 머물렀던 곳으로 유명하며, 조선 성종 때에는 영릉(세종대왕릉)의 원찰(願刹)이었으며, 보은사(報恩寺) 또는 벽사(璧寺)라고 불리기도 하였다고 한다.
여주 신륵사에는 보물 제180호 조사당(祖師堂), 보물 제225호 다층석탑(多層石塔), 보물 제226호 다층전탑(多層塼塔), 보물 제228호 보제존자석종(普濟尊者石鐘), 보물 제229호 보제존자 석종비(普濟尊者石鐘碑), 보물 제230호 대장각기비(大藏閣記碑), 보물 제231호 석등 등 유난히 보물 국가유산들이 많은 사찰이다.
유형문화유산으로는 극락보전(極樂寶殿)과 그 외 부속건물로 구룡루(九龍樓)ㆍ명부전(冥府殿)ㆍ시왕전(十王殿)ㆍ산신당ㆍ육각정 등이 있다.
구룡루(九龍樓)는 극락보전 앞에 자리한 누각으로 정면 3칸 옆면 2칸의 겹처마 팔작지붕으로 1, 2층 모두 사방이 트여있으며, 의식을 집행하는 장소로 쓰였다고 전해진다.
구룡루는 석가모니 탄생 시 용 9마리가 물을 뿌려 부처님을 목욕시켰다는 설화가 있으며, 누각 앞에는 구룡루(九龍樓), 뒤에는 봉미산신륵사(鳳尾山神勒寺) 현판이 두 개 걸려 있다.
신륵사 극락보전은 아미타불을 모시는 법당으로 절의 중심부에 자리하고 있으며, 1678년(숙종 4년)에 지어진 후 1797년(정조 21년)에 수리하기 시작하여 1800년(정조 24년)에 완공되었다고 한다.
극락보전은 앞면 3칸 옆면 2칸의 팔작지붕으로 지붕처마를 받치는 다포장식이며, 안쪽에는 불단 위에 나무로 만든 아미타여래삼존상(보물 1791호)이 모셔져 있다.
신륵사 극락보전 안에 모시고 있는 삼장보살도는 천장보살ㆍ지지보살ㆍ지장보살을 중심으로 해당 권속들의 모임이 통일감 있고 안정감 있게 묘사되어 있다.
신륵사 다층석탑(神勒寺 多層石塔)은 극락보전 앞에 자리한 석탑으로, 2단으로 기단을 쌓고 그 위로 여러 층의 탑신을 쌓아 올린 탑으로 보물(寶物) 제225호이다.
바닥 돌 윗면에는 연꽃을 돌려 새겼으며 아래층 기단의 네 모서리에 새겨진 기둥조각은 물결무늬가 도드라지게 새겨져 있으며, 아래층 기단의 맨 윗돌은 두꺼운 탑의 안정감을 높여주며 위층 기단의 모서리에는 꽃모양이 새겨진 기둥이 있고 각 면에는 용무늬가 깊게 새겨져 있다.
신륵사 조사당(神勒寺 祖師堂)은 절에서 덕이 높은 승려의 초상화를 모셔놓은 건물로, 조사당 안에는 불단 중앙에 지공 화상(指空 和尙)이 모셔져 있고 그 좌우에는 무학대사와 나옹 화상(懶翁 和尙)의 영정이 있다. 아담하지만 균형이 잘 잡혀있는 조선 전기의 조각기법이 드러난 건물로 보물(寶物) 제180호이다.
조사당 건물은 지붕처마를 받치는 장식인 공포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사이에도 있는 다포식(多包式) 팔작지붕 건물이며, 앞면에는 6짝의 문을 달아 모두 개방할 수 있게 하였고 옆면에는 앞 1칸만 문을 달아 출입구를 만들어 놓았다.
명부전(冥府殿)은 사람이 죽은 후에 가게 되는 세계를 상징하고 사후세계의 심판관인 시왕(十王)이 봉안되어 있기 때문에 시왕전(十王殿)으로도 부르고 지장보살이 주불(主佛)로 봉안되어 있어 지장전이라고도 부른다고 한다.
불단의 구성은 지장보살을 중앙에 두고 좌측에 도명존자(道明尊者), 우측에 무독귀왕(無毒鬼王)이 봉안되고 있고 좌우로 명부의 시왕들이 차례로 안치되어 있다.
봉송각(奉送閣)은 사십구재 또는 기타의 재를 모신 후 떠나가는 영가님들을 극락세계에 태어나시도록 마지막 전송하는 전각이라고 한다.
봉송각은 석탑 앞에 놓인 남겨준 동전을 10여년 모은 것과 두 보살의 시주로 조성한 불사라고 한다.
신륵사 대장각비기(神勒寺 大藏閣記碑)는 고려 말 신륵사에 대장각(大藏閣)을 만든 후 그 내력을 새긴 비(碑)이며 보물(寶物) 제230호이다.
길쭉한 사각형의 바닥돌 위에 받침돌을 놓고 그 위로 비의 몸체를 세운 후 지붕들을 얹은 형태로 되어 있으며, 몸체의 양옆에 있는 돌기둥이 몸체를 단단히 지탱하고 있다.
이색(李穡)이 공민왕과 부모의 명복을 빌고자 보제존자 나옹(懶翁) 화상의 제자들과 함께 발원하여 고려대장경을 인쇄하고 이를 보관하기 위해 이곳에 2층의 대장각을 지었다고 한다.
현재 몸체의 문면(文面)은 크게 파손되어 있어 전문을 판독할 수 없으나, 비(碑)의 뒷면에는 대장경 인쇄와 대장각 건립에 참여했던 비구ㆍ비구니ㆍ우바새ㆍ우바이를 구분하여 그 명단이 열거되어 있다.
신륵사 다층전탑(神勒寺 多層塼塔)은 아래로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위에 세워져 있는 높이 약 9.4m의 현존 유일의 고려시대 전탑으로 보물(寶物) 제226호이다.
이 전탑은 2단으로 기단을 쌓고 다시 3단의 기단을 쌓은 후 여러 층의 탑신(塔身)을 쌓아 올린 탑으로, 기단과 계단은 화강암으로 만들었으며 탑신부는 흙벽돌로 6층까지 쌓아 올렸으며 그 위에 다시 몸돌 하나가 올라가 있어 7층으로 보이기도 한다.
전탑(塼塔)이란 흙으로 구운 벽돌로 쌓은 탑을 말하며, 우리나라에서는 경기도와 경북 안동지역에 몇 기가 남아있다고 한다.
한편, 탑의 북쪽을 수리할 때 세운 비가 전해지는데 그 비에 1726년(영조2년)에 고쳐지었다고 적혀있기 때문에 현재의 탑이 원래의 모습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하며, 이 탑이 세워진 연대는 확실히 알 수 없으나 벽돌의 문양 등을 근거로 고려시대로 보는 견해가 많다고 한다.
강월헌(江月軒)은 남한강변 언덕위에 우뚝 솟아있는 멋스러운 정자이며, 고려 후기의 고승인 혜근(惠勤)의 호가 나옹(懶翁) 또는 강월헌(江月軒)인 것으로 미루어 그를 추모하기 위해 세운 정자로 전해진다.
신륵사 삼층석탑(三層石塔)은 화강암을 깎아 만든 탑으로 강월헌(江月軒) 정자 옆에 자리하고 있으며, 고려말 나옹 화상을 화장한 장소에 이 탑을 세웠다는 기록이 남아 있어 그 시대에 세워진 것을 추정된다고 하며 고려 후기 탑 연구에 귀중한 자료라고 한다.
탑을 지탱하고 있는 기단부는 넓적한 한 장의 돌로 만들어져 있고 그 위에는 사각형의 상대중석과 갑석이 있으며, 상대중 각면에는 기둥 모양의 우주(隅柱)와 탱주를 새겼고 그 위를 덮고 있는 갑석에는 연꽃무늬가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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