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왕과 왕비의 제사를 지내던 국가 사당, 종묘(宗廟)
서울 종로구 훈정동에 위치한 종묘(宗廟)는 조선과 대한제국의 역대 왕과 왕비, 황제와 황후의 신주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국가 사당이며 1995년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조선 건국 후 1395년(태조 4년)에 ‘궁궐을 기준으로 왼쪽에 종묘, 오른쪽에 사직을 세운다’는 예에 따라 현재의 자리에 종묘를 창건하였으며 가장 정제되고 장엄한 건축물 중의 하나이다.
종묘는 조선 왕조가 한양으로 도읍을 옮긴 1394년 12월에 착공하여 1395년(태조 4년) 9월에 완공 하였으며, 곧이어 개성으로부터 태조의 4대조인 목조ㆍ익조ㆍ도조ㆍ환조의 신주를 모셨다.
종묘 경내에는 현재, 종묘서(宗廟署)의 관원들이 제례에 관한 업무를 보던 망묘루(望廟樓)를 비롯하여 향과 축문을 보관하는 향대청(香大廳), 왕과 세자가 제사를 올릴 준비를 하던 재궁(齋宮), 그리고 제사의 음식을 마련하는 전사청(典祀廳) 등의 건물이 있다.
망묘루(望廟樓)는 향대청 남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제향(祭享)때 임금이 머물면서 사당을 바라보며 선왕(先王)과 종묘사직을 생각한다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며, 망묘루는 건물 중 한 칸이 누마루로 되어 있다.
공민왕 신당(恭愍王 神堂)은 망묘루 동쪽에 있는 별당으로 고려 31대왕 공민왕을 위하여 종묘 창건 시에 건립되었다고 전해지며, 신당의 정식 명칭은 '고려 공민왕 영정 봉안지당(高麗 恭愍王 影幀 奉安之堂)'이다.
신당 내부에는 공민왕과 노국대장공주(魯國大長公主)의 영정(影幀)과 준마도(駿馬圖)가 봉안되어 있으며, 공민왕이 친히 그렸다고 전해지는 말 그림도 있다.
향대청(香大廳)은 제사 전날 왕이 종묘제례에 사용하기 위해 친히 내린 향ㆍ축문ㆍ폐백과 같은 제사 예물을 보관하는 곳이다.
향대청 앞에는 행각이 길게 자리 잡고 있어 두 건물 사이에 남북으로 긴 뜰이 만들어졌으며, 또 종묘제례 시 제관들이 대기하던 곳이기도 하다.
재궁(齋宮)은 왕이 머물면서 왕세자와 함께 제례를 준비하던 곳으로, 어재실(御齋室)ㆍ세자재실(世子齋室)ㆍ어목욕청(御沐浴廳)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마당을 중심으로 북쪽에 왕이 머무르는 어재실, 동쪽에 세자가 머무는 세자재실, 서쪽에 어목욕청이 있고, 담으로 둘러져 있으며 왕과 왕세자는 재궁 정문으로 들어와 각 실에 머물면서 목욕재계하고 의관을 정제하여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였다.
정전(正殿)은 왕과 왕비가 세상을 떠난 후 궁궐에서 삼년상(27개월)을 치른 다음에 그 신주를 옮겨와 모시는 건물로 종묘에서 가장 중심이 되며, 1985년에 국보로 지정되었다.
건물 앞에 있는 가로 109m 세로 69m의 넓은 월대는 정전의 품위와 장중함을 잘 나타내고 있으며, 월대 가운데에는 신문에서 신실로 통하는 긴 신로가 깔려있다.
정전(正殿) 악공청(樂工廳)은 종묘제례 시에 주악하는 악사들이 대기하는 건물이며, 정면 6칸 측면 2칸의 맞배집으로 소박하고 간결한 건축양식을 나타내고 있다.
영녕전(永寧殿)은 신실 하나하나의 구성은 정전과 크게 다름이 없지만, 부재의 크기가 정전보다 약간 작고 전체 건물 규모도 정전보다 작다.
네모난 아랫부분에 원형 주좌를 둔 주춧돌에 둥근 기둥과 간단한 초각을 한 익공을 짜고, 퇴칸 안에 두 짝 판문을 달고 뒤는 화방벽으로 쌓고 서까래는 부연 없는 홑처마로 꾸미는 등 세부 구성은 정전과 거의 같으며 역시 부재 표면도 단청 없이 간단히 주칠로 마감하였다.
영녕전 악공청(永寧殿 樂工廳)은 종묘제례(영녕전) 때 악공과 일무원들이 대기하는 건물이며, 정면 3칸 옆면 1칸의 구조로 정전 악공청에 비해 규모가 작다.
전사청(典祀廳)은 종묘제례에 올리는 제수(祭需)를 마련하는 곳으로, 평소에는 제례에 사용하는 제기 등의 집기들을 보관하였으며, 1395년(태조 4년)에 종묘를 창건할 때 함께 지었다.
전사청 동쪽에는 제사에 쓰는 우물인 제정(祭井)이 있으며 그 주위에는 담을 쌓아 사람들이 함부로 출입하지 못하도록 하였으며, 전사청 서쪽에는 종묘를 지키는 수복들이 머물렀던 수복방(守僕房)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