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둘레길 남산공원에 자리한 백범광장(白凡廣場)
서울시 중구 회현동에 자리한 백범광장(白凡廣場)은 남산 서쪽의 녹지대를 포함한 약 2,500여 평 규모에 드넓은 잔디광장과 더불어 백범 김구(金九)선생과 이시영(李始榮) 선생의 동상이 자리하고 있다.
백범광장은 일제 강점기에 조국광복을 위해 일생을 바친 백범(白凡) 김구(金九)선생을 기념하기 위하여 1968년에 잔디밭과 함께 조성한 광장이며 남산으로 오르는 길의 시작이기도 하다.
백범광장에는 원래 이승만 전 대통령의 동상이 있었던 곳이나 4.19혁명 때 허물고, 지금은 백범 김구선생의 동상과 함께 대한민국 초대 부통령을 지닌 성재(省齋) 이시영(李始榮)선생의 동상이 자리하고 있다.
백범광장 위로는 안중근의사 기념관과 한양도성 유적전시관 등이 산허리를 타고 펼쳐져 있으며, 남산둘레길 북측순환로 출발점으로 이어진다.
남산공원의 한양도성 성곽 계단을 따라 남산으로 오르는 길에 조성된 백범광장 구간은 서울시에서 2009년부터 서울성곽 발굴조사를 벌인 결과 한양도성 기단부를 발견하여 이를 복원키로 하고 서울성곽 약 84m의 성곽 복원공사를 마무리 하였다.
백범(白凡) 김구(金九)선생은 독립과 통일민족국가 건설을 위해 투쟁하고 애국계몽운동을 전개하였던 독립운동가로, 임시정부의 초대 경무국장을 거쳐 국무위원과 주석을 지냈으며 이후 여러 갈래로 갈라진 민족독립운동 진영을 통합하고자 하였다.
김구선생은 해방 이후 신탁통치를 반대하고 반탁운동을 맹렬히 전개하며 완전자주독립노선을 주장하였으나, 1949년 경교장에서 육군 현역 장교 안두희가 쏜 총탄을 맞고 서거하였다.
성재(省齋) 이시영(李始榮)선생은 일제 때 중국으로 망명하여 경학사와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하여 교육을 진흥하고 독립군을 양성하였으며, 1919년 상해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여 법무총장ㆍ재무총장으로 재직하였다.
이시영(李始榮)은 1948년 제헌국회에서 실시된 정ㆍ부통령선거에서 대한민국 초대부통령에 당선되었으나, 이승만(李承晩) 전 대통령의 전횡에 반대하여 1951년 국회에 부통령직 사임서를 제출하고 정부를 떠난 후 1953년에 부산에서 서거하였다.
호현당(好賢堂)은 백범광장 뒤편에 자리한 남산의 전통 한옥 가옥으로, 남산의 역사와 전통을 살리고 허례허식 결혼문화를 개선한다는 취지로 개방한 건물이라고 한다.
호현당은 2015년 5월에 서당으로 탈바꿈하여 남산을 방문하는 시민과 외국인에게 한국의 예절과 차 문화를 접하는 기회를 제공하면서 전통문화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