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옥기(玉器) 유물, 대만 국립고궁박물관
대만(臺灣) 타이페이(台北市) 스린구(士林區)에 위치한 대만 국립고궁박물관(國立故宮博物院)은 소장품 수가 약 69만 7천여 개에 이르는 세계 4대 박물관 중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고 한다.
국립고궁박물관에는 중국 황실 유물을 비롯하여 옥기(玉器)ㆍ도자기ㆍ금속 공예품ㆍ회화 등의 다양한 유물이 있으며, 중국 국민당이 국공 내전에서 패배하여 대만으로 이동할 때에 대륙에서 가져온 문화재가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중국 옥기(玉器)는 청나라 때 발전하였으며 건륭제는 옥(玉)을 사랑하여 1760년에 동투르키스탄의 위구르 지역을 정복한 후 호텐(khotan)에서 아름다운 옥 원자재가 중부 평원으로 대량 수입하였다.
이 시기에 주관적 요소와 객관적 요소의 완벽한 조합으로 옥기 생산이 전례 없는 번영을 이루었으며, 그러나 시장 패션과 황제의 취향이 갈라진 것도 이때였다고 한다.
옥 세공은 건륭제 통치시절에 정점에 도달한 후 점치 느린 변화의 시대로 접어들었으며, 가장 큰 변환점은 중국의 7,000년 된 옥 품질에 대한 인식의 변화였다.
모든 요소의 조건은 제3의 옥 산업에 완벽하게 자리 잡았고 우아함과 저속함, 그리고 복고와 현대의 갈등으로 인해 시대의 스타일이 더욱 풍부하고 흥미로워졌다고 한다.
건륭제(乾隆帝) 이후 정교함의 정점에 도달한 중국의 옥 예술은 점차 새로운 아이디어가 생겨나는 침체기에 접어들었다고 한다.
찬란한 광채를 지닌 제이다이트는 칼세도니(Chalcedony)의 부드럽고 절제된 아름다움과는 달리 칼세도니를 대체하여 현대에서 가장 소중히 여기는 옥이 되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옥’이라는 개념 자체였다. 7,000년 동안 옥은 중국인에게 조용한 아름다움을 지닌 크림 같은 부드러운 연옥을 의미했지만, 지금은 눈부신 에메랄드 그린의 비취가 최근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으며 그 이후로 그 화려함이 지배하였다.
궁전 옥은 ‘제국에서 사용하기 위해’ 또는 제국의 시와 함께 만들어졌으며 옥이 그 자체의 위대함을 말하고 그가 사랑하는 옥의 시대적 스타일이 어떻게 되었는지 보여주기 위해 사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