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전형적인 성곽 문루(門樓), 창의문(彰義門)
서울 종로구 청운동에 자리한 창의문(彰義門)은 서울 성곽의 4소문(小門) 중 하나이며, 4소문 중에서 유일하게 조선시대에 지어진 전형적인 성곽 문루(門樓)의 모습으로 완전히 남아있는 성문(城門)이다.
조선시대 서울성곽에는 동서남북에 4대문을 두고 그 사이에 4소문을 두었는데, 창의문은 서대문과 북대문 사이에 둔 북소문(北小門)으로 인왕산과 백악산이 만나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창의문(彰義門)은 ‘올바른 것을 드러나게 하다’라는 뜻이 있으며, 이곳 계곡의 이름을 빌어 일명 자하문(紫霞門)이라는 별칭으로 불려왔으며 북소문(北小門)으로 불리지는 않았다고 한다.
창의문은 정면 3칸 측변 2칸의 우진각 지붕건물이며, 1396년(태조 5년)에 도성 8문(門) 중 하나로 창건되었으며 보물 제1881호로 지정되어 있다.



성문의 무지개 모양 맨 위에는 봉황 한 쌍이 아름답게 새겨져 있는데, 속설에 의하면 이는 닭 모양을 그린 것으로 창의문 밖 지형이 지네처럼 생겼으므로 지네의 천적인 닭을 그려 놓은 것이라고도 한다.
창의문은 한 때 숙정문(肅靖門)과 더불어 경복궁의 양팔과 같으므로 지맥을 상하게 해서는 안된다는 건의를 받아 소나무를 심고 통행을 금지하기도 하였으며, 그 후 군인들의 출입통로로 이용할 수 있게 하였고 1617년(광해군 9년)에는 궁궐보수작업 때 석재의 운반을 위하여 열어주었다는 조선왕조실록 기록도 있다.



창의문은 1623년 인조반정 때 반정군들이 이 문을 부수고 창덕궁에 들어가 광해군을 몰아내는데 성공하였으며, 임진왜란 때 문루(門樓)가 소실된 것을 1741년(영조 17년)에 복원하였다.
영조는 인조반정을 기념하기 위해 창의문 문루 내부에 인조반정 공신들의 이름을 판각(板刻)하여 걸어 놓기도 하였으며, 풍수지리설에 따라 한때는 문루에 나무로 만든 큰 닭을 걸어놓기도 하였다.



창의문(彰義門) 바로 아래에는 1968년 1월 21일 북한 민족보위성 정찰국 소속의 무장공비 31명이 청와대를 습격하여 박정희 대통령을 암살할 목적으로 서울에 침투했을 때 전사한 최규식 경무관과 정종수 경사의 동상과 순직비가 자리하고 있다.
자하문까지 내려온 공비들은 이곳에 설치된 검문소에서 정종수 경사 등 종로경찰서 경찰관 9명에게 검문을 받자, 공비들은 방첨부대원 CIC대원이라며 막무가내로 통과하려 하자 수상함을 느낀 정종수 경사가 이들을 막아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