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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5

시원한 계곡물 따라 찾아가는 석림사(石林寺) 경기도 의정부시 장암동의 수락산(水落山) 기슭에 자리한 석림사(石林寺)는 1671년(현종 12년)에 석현화상과 그의 제자 치흠이 창건한 사찰이라고 하며 그 당시에는 박세당(朴世堂)이 지은 석림암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고 한다. 석림사는 이후 여러 차례 중창하였으나 6.25전쟁 때 불타 소실되었으며, 1960년대 비구니 상인(相仁)스님과 보각스님이 복원 및 중창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으며 경기도 전통사찰 제202호로 지정되어 있다. 석림사에 현존하는 당우로는 아미타삼존불후불탱화ㆍ신중탱화 등을 봉안하고 있는 큰법당을 중심으로 적묵당ㆍ진영각ㆍ산령각ㆍ칠성각ㆍ범종각ㆍ요사채 등의 건물, 그리고 석조지장보살입상과 오층석탑 등이 모셔져 있다. 석림사에는 다른 사찰과는 달리 대방이 법당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그밖에 특.. 2023. 6. 28.
조선후기 대표적 실학자 박세당(朴世堂) 고택(古宅) 경기도 의정부시 장암동에 위치한 박세당 고택(古宅)은 서계(西溪) 박세당(朴世堂)이 10년 동안의 벼슬에서 물러난 후 이곳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저술활동을 하였던 곳이라고 한다. 박세당의 원래 가옥은 안채ㆍ안사랑ㆍ바깥사랑ㆍ행랑채로 이루어져 있었으나 6.25전쟁 때 대부분 타버리고, 현재는 정면 5칸 측면 2칸 반의 누마루가 덧붙여져 있는 ‘乙’자형의 사랑채만 남아있다. 박세당 고택 사랑채의 동쪽에는 수락산을 뒷산으로 하고 서쪽 멀리에는 도봉산을 바라보고 있는 가옥이며, 경기도 문화재 재료 제93호로 지정되어 있다. 박세당 고택은 유적과 묘역 그리고 후손의 종가가 한 자리에 모여 있으며, 고택은 사유지이기 때문에 현재 일반인 출입이 제한되어 있으며, 관람을 하려면 사전예약을 하여야 방문할 수 있다고 하며 고.. 2023. 6. 16.
박태보(朴泰輔)의 뜻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노강서원(鷺江書院) 경기도 의정부시 장암동에 위치한 노강서원(鷺江書院)은 박태보(朴泰輔)의 뜻을 기리고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기 위해 1695년에 노강(鷺江, 현 노량진)에 충렬사(忠烈祠)로 창건한 서원이다. 노강서원은 대원군의 서원철폐 당시에도 철폐되지 않고 남은 47개 서원 중의 하나이며, 당시 건물은 6.25전쟁으로 타버리자 매월당 깁시습의 영정을 봉안했던 청절사 터인 지금의 자리에 1969년에 옮겨 복원한 것이라고 한다. 노강서원은 1697년(숙종 23년)에 ‘노강((鷺江)’이라고 이름을 지어 사액을 처음 받았으며, 1791년에 노강서원으로 승격되면서 다시 사액을 받았다고 한다. 노강서원은 1689년(숙종 15년)에 인현황후 민씨를 내쫓을 때 죽음으로써 반대하였던 문렬공(文烈公) 박태보(朴泰輔)의 뜻을 .. 2023. 6. 15.
교육장소 강당이 따로 없었던 노강서원(鷺江書院) 경기도 의정부시 장암동에 위치한 노강서원(鷺江書院)은 1689년(숙종 15년) 인현황후 민씨를 내쫓을 때 죽음으로써 반대하였던 정재 박태보(定齋 朴泰輔)의 뜻을 기리고 유학자를 교육하기 위해 건립하였던 서원이다. 이 서원은 1697년에 조윤벽(趙潤璧) 등의 청액소(請額疏)로 노강(鷺江)이라 사액되었으며, 1701년에는 국가에서 인정한 사액서원(賜額書院)이 되었다고 한다. 노강서원은 본래 노량진에 건립하였던 풍계사(豊溪祠)였으며, 박태보(朴泰輔)를 기리기 위해 노량진에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으며, 당시 서원은 한국전쟁으로 타버리자 1969년에 지금의 자리로 옮겨 복원한 것이라고 한다. 노강서원은 대원군의 서원철폐 당시에도 철폐되지 않고 남은 47개 서원 중의 하나이며,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 2018. 6. 29.
사랑채만 남아있는 박세당(朴世堂) 고택(古宅) 경기도 의정부시 장암동에 위치한 서계(西溪 ) 박세당(朴世堂)의 고택(古宅) 사랑채는 동쪽에 수락산을 뒷산으로 하고 서쪽 멀리에는 도봉산을 바라보고 자리 잡은 집으로, 벼슬에서 물러난 후 이곳에서 후학을 양성하던 곳이라 한다. 조선 후기 실학자인 박세당의 원래 가옥은 안채ㆍ안사랑ㆍ바깥사랑ㆍ행랑채로 이루어져 있었으나 6.25전쟁 때 대부분 타버리고, 현재는 정면 5칸 측면 2칸 반의 누마루가 덧붙여져 있는 ‘乙자’형의 사랑채만 남아있다 사랑채 뒷쪽의 영진각(影眞閣)에는 박세당의 아버지인 하석(霞石) 박정(朴炡)과 박세당의 초상화 2점이 모셔져 있으며, 가옥 뒷쪽에 있는 묘역에는 부인 의령 남씨의 산소에 박세당 선생이 같이 묻힌 후, 둘째부인 정씨도 함께 묻힌 세 분의 합장묘가 있다. 2018. 6.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