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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철폐령5

박세희(朴世熹)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는 안곡서원(安谷書院) 경기도 화성시 서신면 상안리에 위치하고 있는 안곡서원(安谷書院)은 조선후기 박세희(朴世熹)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고 위패를 모신 서원이다. 안곡서원이 있던 자리는 원래 1666년(현종7년)에 남양 현감으로 부임한 민시중이 지방 유림의 의견에 따라 기묘사화로 귀양을 간 박세희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지은 안곡사(安谷祠)가 있던 곳이라고 한다. 안곡사(安谷祠)는 그 후 박세희의 큰 형으로 향리에 은거하며 학문을 닦고 효행을 실천하며 존경을 받았던 박세훈(朴世勳)을 추가로 사당에 모셨으며, 1697년에는 영의정을 지낸 홍섬(洪暹)을 추가로 모시고 배향하였다. 안곡사는 1721년(경종1년)에 임금이 사당ㆍ서원ㆍ누문 따위에 이름을 지어서 새긴 편액(扁額)을 내린 사액(賜額)받아 서원이 되었으.. 2022. 9. 6.
교육을 통해 선비문화를 선도하는 설봉서원(雪峯書院) 경기도 이천시 관고동에 자리한 설봉서원(雪峯書院)은 1564년(명종 19년)에 안흥지(安興池) 주변에 향현사를 창건하고 장위공 서희(章威公 徐熙)을 봉향하였으며, 이후 이관의(李寬義)ㆍ김안국(金安國)을 추배하고 삼현사(三賢祠)라 칭하였다. 설봉서원의 원래 위치는 이천시 안흥지(安興池) 주변이었으나 임진왜란 전 설봉산 아래로 옮기면서 설봉서원(雪峯書院)으로 명명되었으며, 1593년(선조 26년)에 이천읍 관고리 현재 장소로 이건하였고 1857년(철종 8년)에는 3선현 외에 최숙정(崔淑精)을 추가로 배향하였다고 한다. 설봉서원은 1871년(고종 8년)에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헐리게 되었으며, 위패는 서원 자리에 매안(埋安)하고 단(壇)을 설치하여 향사를 지내 오다가 철폐된 지 136년 만인 2007년에 복.. 2020. 12. 16.
선비의 충절과 덕행을 기리는 덕봉서원(德峰書院) 경기도 안성시 양성면 덕봉리에 위치한 덕봉서원(德峰書院)은 1695년(숙종 21년)에 조선시대 문신인 오두인(吳斗寅)의 충절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창건하고 위패를 모신 서원이다. 덕봉서원은 교육기관으로서의 역할보다는 제사를 올리는 사당의 역할이 더 강한 조선 후기 서원으로,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 때 훼철되지 않고 존속한 47개 서원 중 하나라고 한다. 덕봉서원은 1697년에 덕봉사우(德峰祠宇)로 사액(賜額)되어 사액서원으로 승격되었으며, 그 뒤 1794년(정조 18년)에 강당을 중수하였고 동재(東齋)와 서재(西齋)는 1940년에 훼손되었다가 새로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덕봉서원은 경사진 대지의 아래쪽 터에는 강학인 정의당(正義堂)과 동재ㆍ서재가 있으며 위쪽 터에는 사당인 덕봉사우(德峰祠.. 2020. 9. 29.
이항복(李恒福)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는 화산서원(花山書院) 경기도 포천시 가산면 방축리에 위치한 화산서원(花山書院)은 조선 선조 때 재상인 백사(白沙) 이항복(李恒福)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건립한 서원이라고 한다. 백사 이항복은 우애와 해학이 얽힌 ‘오성과 한음이야기’의 오성대감으로 유명하며, 임진왜란 때 병조판서가 되어 전쟁을 지휘하며 국난 극복에 힘썼던 인물이다. 화산서원은 포천지방 유림의 뜻을 모아 1631년(인조 9년)에 사당을 창건하였고, 이후 백사서원(白沙書院)이라 칭하다가 1659년(효종 10년)에 이곳의 ‘꽃뫼’라는 지명을 따서 화산(花山)이라 사액(賜額)을 받았다고 한다. 서원 내의 건물로는 인덕각(仁德閣)ㆍ내신문(內神門)ㆍ협문(夾門)ㆍ외신문(外神門), 그리고 서재(西齋)인 필운재(弼雲齋)와 동재(東齋)인 동강재(東岡齋) 등이 있으며,.. 2019. 8. 21.
교육장소 강당이 따로 없었던 노강서원(鷺江書院) 경기도 의정부시 장암동에 위치한 노강서원(鷺江書院)은 1689년(숙종 15년) 인현황후 민씨를 내쫓을 때 죽음으로써 반대하였던 정재 박태보(定齋 朴泰輔)의 뜻을 기리고 유학자를 교육하기 위해 건립하였던 서원이다. 이 서원은 1697년에 조윤벽(趙潤璧) 등의 청액소(請額疏)로 노강(鷺江)이라 사액되었으며, 1701년에는 국가에서 인정한 사액서원(賜額書院)이 되었다고 한다. 노강서원은 본래 노량진에 건립하였던 풍계사(豊溪祠)였으며, 박태보(朴泰輔)를 기리기 위해 노량진에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으며, 당시 서원은 한국전쟁으로 타버리자 1969년에 지금의 자리로 옮겨 복원한 것이라고 한다. 노강서원은 대원군의 서원철폐 당시에도 철폐되지 않고 남은 47개 서원 중의 하나이며,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 2018. 6.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