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여주시 능서면 왕대리에 자리하고 있는 영릉(寧陵)은 효종(孝宗)과 인선왕후(仁宣王后)의 능으로,
처음엔 구리시 동구릉(東九陵)에 있었으나 석물에 틈이 생겨 1673년(현종 14년)에 현 위치로 옮겼다고 한다.
영릉(寧陵)은 왕릉과 왕비릉을 풍수지리에 의해 조선왕릉 중 최초의 형태인 위ㆍ아래로 만든 쌍릉(雙陵) 형식을 취하고 있으며,
세종의 영릉(英陵)과 두 묘역을 합쳐 영녕릉(英寧陵)이라 부르기도 한다.
효종은 인조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1626년(인조 4년)에 봉림대군에 봉해지고
1636년(인조 14년)에 병자호란으로 형인 소현세자와 함께 인질로 8년간이나 청나라 심양에 볼모로 잡혀가 있었다.
청나라 볼모에서 풀려난 후 소현세자가 변사하자 뒤를 이어 왕세자에 책봉되었으며
1649년(인조 27년)에 창덕궁에서 즉위하였다.
효종은 대동법을 실시하고 상평통보를 주조하여 화폐를 널리 보급하였으며,
조선왕조가 당한 굴욕을 씻고자 청나라 정벌을 계획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재위 10년 만에 창덕궁 대조전에서 승하하였다.
인선왕후(仁宣王后)는 우의정 장유(張維)의 딸로 현종(顯宗)의 어머니이며,
처음에는 풍안부부인(豊安府夫人)으로 책봉되었다가 1645년에 봉림대군(鳳林大君)이 세자가 되자 세자빈으로 되었으며,
1649년에 효종이 즉위하면서 왕비가 되었고 2년 뒤 정식으로 책명을 받았다.
영릉(寧陵)은 병석을 세우지 않고 왕릉 바깥쪽으로 나지막한 담을 쌓아 봉분을 감싸고 12칸의 난간석을 설치하였으며,
돌 난간의 기둥 사이를 받치는 동자석(童子石)에는 십이방위 문자를 새겼다.
영릉(寧陵)의 석물로는 석양(石羊)ㆍ석호(石虎)ㆍ석마(石馬)ㆍ망주석ㆍ문인석ㆍ무인석ㆍ장명등 등이 배치되어 있으며,
왕비릉에는 곡장만 없을 뿐 다른 배치는 왕릉과 똑같이 구성되어 있다.
조선시대 왕릉의 형태를 보면 세조 때부터 병풍석을 세우지 않는 전통이 있었으나
성종의 무덤인 선릉(宣陵)부터 십이지신상을 새긴 병석을 다시 설치하였지만,
영릉(寧陵)에서 다시 병석을 세우지 않는 또 하나의 전기가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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