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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왕이 된 후궁들의 사당, 칠궁(七宮)

kangdante 2022. 6. 28. 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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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궁정동에 위치한 칠궁(七宮)

조선시대에 아들이 왕이나 왕으로 추존된 일곱 후궁들의 신위(神位)를 모시고 있는 사우(祠宇)이며

사적 제149호로 지정되어 있다.

 

칠궁에는 숙종의 후궁 두 명, 영조의 후궁 두 명, 선조정조고종의 후궁이 각각 한명씩이며,

대빈궁(大嬪宮)육상궁(毓祥宮)연호궁(延祜宮)선희궁(宣禧宮)저경궁(儲慶宮)경우궁(景祐宮)

덕안궁(德安宮) 등 7신위가 모셔져 있다.

 

 

칠궁 내에는 7()의 사당 외에 재실인 풍월헌(風月軒)을 비롯하여

냉천정매죽재삼락정전사청향대청제기고수복방 등의 부속시설들이 있다.

 

7궁의 재실(齋室)인 풍월헌(風月軒)과 송죽재(松竹齋)

제를 지낼 때 제물을 준비하는 8칸의 팔작지붕의 기와집 건물이며,

삼락당(三樂堂)은 풍월헌과 송죽재 뒤편으로 연결되어 있는 안채역할을 했던 정면 7칸 측면 3칸의 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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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천정(冷泉亭)의 건립연도는 전해지지 않으나

숙빈묘(淑嬪廟)라는 이름으로 육상궁이 처음 건립된 영조 초반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냉천정이라는 이름은 옆에 냉천이라는 우물이 있어 붙여진 것으로 전해지며,

영조가 어머니 제삿날 나와서 정성스럽게 제사를 준비하던 장소이자 휴식을 취했던 곳으로

냉천정에는 영조의 어진 모사품이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7궁이 있는 이곳은 원래 1725년에 영조(英祖)의 어머니인 숙빈(淑嬪) 최씨의 신위를 모신 숙빈묘(淑嬪廟)라 하였으나,

1744년에 육상묘(毓祥廟)로 이름을 고쳤고 1753년에는 다시 육상궁(毓祥宮)으로 이름을 고치고

()에서 궁()으로 개칭하였다고 한다.

 

숙종의 후궁으로는 경종의 모친인 장희빈을 모신 대빈궁(大嬪宮)

영조의 모친인 숙빈 최씨를 모신 육상궁(毓祥宮)이 있고,

영조의 후궁으로는 추존왕 진종(효장세자)의 모친인 정빈 이씨를 모신 연호궁(延祜宮)

추존왕 장조(사도세자)의 모친인 모신 영빈 이씨를 모신 선희궁(宣禧宮)이 있다.

 

선조의 후궁이면서 추존왕 원종의 모친인 인빈 김씨를 모신 저경궁(儲慶宮),

정조의 후궁이면서 순조의 모친인 유비 박씨를 모신 경우궁(景祐宮),

그리고 고종의 후궁이면서 영친왕의 모친인 엄황귀비를 모신 덕안궁(德安宮)이 있다.

 

 

대빈궁(大嬪宮)은 숙종의 후궁이며 경종(景宗)의 생모인 희빈(禧嬪) 장씨의 신주를 모신 사당으로,

1870(고종7)에 육상궁에 모셨으나 1887(고종24)에 낙원동으로 옮겼다가

1908(순종2)에 다시 육상궁으로 옮겨 오늘에 이른다.

 

희빈 장씨는 숙종의 총애를 받아 숙원을 거쳐 숙의에 올라 경종을 낳고 희빈이 되었으며,

인현왕후 민씨가 폐비되자 왕비에 올랐다가 민씨가 왕후로 복권되면서 희빈으로 다시 강등되었으며

1701(숙종 27)에 인현왕후를 저주한 혐의로 사사(賜死)되었다.

 

 

저경궁(儲慶宮)은 선조의 후궁으로 추존된 원종(元宗)의 생모인 인빈(仁嬪) 김씨의 신주를 모신 사당이며,

인빈(仁嬪) 김씨는 후궁 가운데 선조의 총애를 받았으며 정원군(元宗)을 포함하여 45녀를 낳았다.

 

원래는 원종이 살았던 남부 회현방 송현(한국은행 뒤편)에 세워 1743(영조19)에 송현궁(松峴宮)이라 불렀으며,

1755(영조31)에 저경궁으로 고친 후 1908(순종2)에 현재의 장소로 옮겼다고 한다.

 

 

경우궁(景祐宮)은 정조의 후궁이며 순조의 생모인 수빈(綏嬪) 박씨의 신주를 모시는 사당이며.

1820(순조20)에 생을 마감하자 이듬해 신주를 창경궁 내 전각을 이용해 현사궁(顯思宮)이라 하였다.

 

선희궁(宣禧宮)은 영조의 후궁이며 추존한 장조(莊祖, 사도세자)의 생모인 영빈(映嬪) 이씨의 신주를 모신 사당으로,

1870(고종7)에 신주를 육상궁으로 옮겼다가 1896(고종33)에 선희궁의 원래 자리에 복원하였다가

1908(순종2)에 육상궁으로 다시 왔으며 경우궁과 선희궁은 한 묘사 안에 같이 모셔있다.

 

 

연호궁(延祜宮)은 영조의 후궁이자 추존왕 진종(眞宗)의 생모인 정빈(靖嬪) 이씨의 신주를 모시는 곳으로,

연호궁과 육상궁은 가까운 거리에 존속해 오다가 1870년 육상궁 안으로 옮겨와 한 집에 같이 모시고 있다

 

육상궁(毓祥宮)은 숙종의 후궁이자 영조(英祖)의 생모인 숙빈 최씨의 신주를 모신 곳이며,

육상궁은 '상서로움()을 기른다()'는 의미라고 하며 1725(영조1)에 건립되었으며

1882년에 화재로 소실되었으나 1883년에 다시 지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덕안궁(德安宮)은 고종(高宗)의 후궁이며 영친왕(英親王)의 생모인 순헌귀비(純獻貴妃) 엄씨의 위패를 모신 사당으로,

1913년에 지금의 중구 태평로에 새로 궁을 짓고 묘우(廟宇)을 덕안궁이라 하였으며,

1929년에 덕안궁을 현재의 육상궁(毓祥宮)으로 옮기게 되었다.

 

순헌귀비(純獻貴妃) 엄씨는 명성황후의 시위상궁으로 있으며 고종의 승은을 입었으나,

명성황후에게 발각되어 궁궐에서 쫓겨났다가 을미사변 직후 궁으로 다시 들어와

고종의 시중을 들다 영친왕을 출산하자 상궁에서 귀인순빈순비가 되었다가 1903년에 황귀비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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