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서울

창경궁(昌慶宮)에서 즐기는 가을단풍 나들이

kangdante 2022. 11. 23. 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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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와룡동에 위치한 창경궁(昌慶宮)은 정치공간인 외전(外殿)보다는 생활공간인 내전(內殿) 궁궐이었으며,

처음 이름은 세종대왕이 상왕(上王)인 태종을 편안히 모시기 위해 지은 수강궁(壽康宮)이었다고 한다.

 

이후 성종(成宗)이 왕실의 웃어른이신 할머니(세조 비 정희왕후), 어머니인 덕종 비 소혜황후(인수대비),

그리고 작은 어머니인 예종 비 안순왕후 등 세분의 대비(大妃)를 창경궁에 모시게 하면서 궁궐의 면모를 갖추었다.

 

 

성종은 창경궁의 여러 전각의 이름을 짓게 하여

(殿)은 명정(明政)문정(文政)수녕(壽寧)환경(歡慶)인양(仁陽)통명(通明)이라 하였고,

()은 양화(養和)여휘(麗暉)라 하였으며 각()은 사성(思誠)이라 하였다.

 

창경궁은 1592년 임진왜란으로 불타 버린 것을 1616(광해군 8)에 다시 지었으며,

명정전(국보 제226)을 비롯하여 홍화문(보물 제384)풍기대(보물 제846)관천대(보물 제851)

옥천교(보물 제386) 등 다수의 문화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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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경궁에는 왕들의 지극한 효심과 사랑, 왕과 세자의 애증,

그리고 왕비와 후궁의 갈등 등 왕실 가족 사이에 일어난 애증의 이야기가 많이 전해지는 궁궐이며,

장희빈과 인현왕후, 영조와 사도세자 등의 현장이 바로 창경궁이기도 하다.

 

일제는 1909(순종 3)에 궁궐 안의 건물들을 헐어내고 동물원과 식물원을 설치하였으며,

궁의 이름을 창경원으로 낮추기도 하였으나, 1984년에 궁궐 복원사업이 시작되어 원래 이름인 창경궁을 되찾게 되었다.

 

 

관덕정(觀德亭)은 활을 쏘던 정자로 1642년에 지었으며

앞쪽의 넓은 빈터는 군사훈련과 무과시험장으로 쓰였다고 전해진다.

 

정자 뒤로는 단풍 숲이 우거져서 여러 임금들이 단풍의 아름다움을 읊은 시가 전해지고 있다고 한다.

 

 

백송은 중국인 원산지인 희귀한 나무로 조선시대에 중국에 왕래하던 사신들이 가져다 심었다고 하며

현재는 대부분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백송은 나무껍질이 하얗고 껍질조각이 오래되면 저절로 떨어지는 특징이 있으며 잎은 3개씩 모여난다.

 

 

홍화문(弘化門)은 창경궁의 정문으로 조선 중기의 정면 3칸 측면 2칸의 동향 중층 우진각 지붕의 대문이며,

보물 제384호로 지정되어 있다.

 

홍화문 왼쪽의 서북쪽 모서리에 계단이 있어서 위층으로 오르내릴 수 있으며,

1484년에 세웠으나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1616년에 다시 지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숭문당과 문정전

 

함인정(涵仁亭)

 

창경궁의 침전인 경춘전(景春殿)

 

집복헌과 영춘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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