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서울

경복궁을 둘러싸고 있는 돌담의 4개 문(門)

kangdante 2023. 3. 22. 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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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중구 세종로에 위치한 경복궁(景福宮)은 조선시대 5대 궁궐 중 법궁(法宮)으로,

경복궁(景福宮)이라는 이름은 왕조의 큰 복을 빈다.’는 의미로 궁궐 중 가장 먼저 지어졌다.

 

경복궁을 둘러싸고 있는 돌담에는 경복궁의 정문이면서 남문인 광화문(光化門)을 비롯하여

건춘문(동문)신무문(북문)영추문(서문) 4개의 문()

그밖에 망루인 동십자각(東十字閣)과 월문(月門)인 계무문(癸武門) 등이 있다.

 

 

영추문(迎秋門)은 경복궁의 서문(西門)으로 연추문(延秋門)이라고도 하며,

조선시대에 주로 승지 등 관료들이 일상적으로 출입하는 문으로 이용하였다.

 

영추문은 임진왜란 때 화재로 소실된 것을 고종 때 경복궁을 중건하였으나

일제강점기 때인 1926년에 경복궁의 전각들을 헐어낼 때 헐려 그 서쪽에 작은 문을 냈으며

1975년에 원래의 위치보다 남쪽에 영추문을 다시 건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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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추문의 구조는 석축을 쌓아 홍예문(虹霓門)을 만들고

그 위에 설치한 단층의 문루(門樓)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우진각지붕이다.

 

공포(栱包)2익공(二翼工)의 취두(鷲頭)용두(龍頭)잡상(雜像)이 얹혀져 있고,

처마는 부연을 설치한 겹처마이며, 문루에는 출입할 수 있도록 옆면에 벽돌을 쌓아 만든 홍예문을 내었다.

 

 

신무문(神武門)은 경복궁의 서북문으로 청와대 정문과 마주하고 있어 보안 및 경호 등의 이유로 비공개로 남아있었으나,

2006년에 노무현 대통령의 의지에 따라 집옥재 권역과 함께 45년 만에 개방하였다.

 

신무문(神武門) 이름은 서거정(徐居正)북쪽을 지키는 신령스러운 거북이라는 뜻으로 지었다고 하며,

신무문은 음방(陰方) 곧 여자의 방향에 속한다고 여겨 이 문을 열면 여풍(女風)이 분다고 믿었다.

 

 

경복궁을 처음 지었을 때에는 경복궁 북쪽 궁장은 문을 내지 않은 채 목책(木柵)만을 둘렀으며

그 후 궁장을 쌓고 1433(세종 15)에 북문(北門)을 내었다.

 

신무문은 숙정문과 함께 평상시에는 거의 사용하지 않았으며,

왕의 비밀 행차나 사냥을 위해 북쪽 방면으로 나갈 때나 종묘에 행차할 때,

그리고 신무문 밖에서 왕이 신하들과 함께 회맹(會盟) 등을 할 때에만 열었을 뿐이라고 한다.

 

 

계무문(癸武門)은 신무문과 연결된 궁장의 동쪽에 위치한 월문(月門)이며,

경복궁 궁장 전체로 봤을 때 전부 북쪽에 있는 문들로서 무()를 돌림자로 하고 있어

()라는 글자는 북쪽을 의미한다고 한다.

 

 

건춘문(建春門)은 경복궁의 동쪽 문으로 홍예문을 낸 석축 기단위에 단층으로 세운 이익공식 우진각 지붕의 건물이며,

종친왕의 외척 및 부마문반관리상궁나인들만이 드나들 수 있는 문이었다.

 

건춘문은 세종이 집현전의 학사들로 하여금 이름을 짓게 하였는데

이 당시 동쪽에 위치하므로 봄()’자를 넣어 봄을 세운다로 명명하였다고 한다.

 

 

광화문(光化門)은 경복궁(景福宮)의 정문이며,

광화문 앞으로는 넓은 육조거리가 펼쳐진 한양의 중심이며 궁궐 중 가장 중심이 되는 곳이었다.

 

광화문은 1395년에 처음 건립하였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되고 1865(고종 2)에 대원군이 재건하였으나,

6.25전쟁 때 목조부분이 불에 타 없어진 것을 철근 콘크리트로 복원하였다가

지난 2010년에 본래 위치의 석축 위에 목조 건물로 전통적인 옛 모습을 되찾아 복원하였다.

 

 

2021년에는 서울시가 광화문 광장 재구조화 공사와 함께 월대(月臺)를 복원하고

해태상도 원위치로 옮기기로 결정하였으며 현재 공사 중에 있다.

 

 

동십자각(東十字閣)은 경복궁의 궁궐 담장 동남쪽 모서리에 위치한 망루이며,

정면 3칸 측면 3칸의 익공계 양식의 사모지붕 건물이다.

 

동십자각은 일제 때 헐린 서집자각과 같은 규모로 그 위치가 서로 대칭되도록 지었으며,

일제 때 조선총독부를 지을 때 양 날개의 담장을 모두 잃어 차도에 외딴 섬처럼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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