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적인 환경을 벗어나지 못하는 느와르 영화, 화란
영화 ‘화란’은 학교폭력과 가정폭력 그리고 오토바이 절도 조직폭력배들이 난무하는 절망적인 환경 속에서 그 환경에서 벗어나 희망이 있는 곳으로 가기를 갈망하지만, 결국 스스로를 파멸시키고 마는 이 영화의 영어제목인 ‘hopeless’ 처럼 희망이 없는 소위 느와르 영화라 할 수 있다.
영화 제목이 왜 ‘화란’ 인가에 대한 의문이 들지만, 영화 속 희망의 나라로 묘사하고 있는 네덜란드를 뜻하는 한자어 화란(和蘭)을 의미하는 것 같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화란(禍亂)이라는 또 다른 의미로 ‘재앙과 난리를 아울러 이르는 말’도 있음에 주목하게 된다.
영화 속에서 화란(和蘭)을 희망이 있는 곳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을 보아 네덜란드 화란(和蘭)을 의미하는 것으로도 보이고, 한편으로는 영화의 영어 제목이 'Hopeless'인 것으로 보아 희망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니 화란(禍亂)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으므로 중의적 표현(重義的表現)을 사용한 제목인 것도 같다.
연규(홍사빈)는 내일에 대한 그 어떤 희망조차 보이지 않는 지금 살고 있는 동네를 떠나고 새아버지의 가정폭력 속에서도 벗어나기 위해, 어렴풋이 희망이 있어 보이는 화란으로 엄마와 함께 떠나는 유일한 희망을 품고 중국집에서 배달 알바를 하며 꼬박꼬박 돈을 상자 속에 모으며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
영화 ‘화란’은 그러나 시작부터 꼬이는 것으로 시작된다. 연규는 그의 여동생 하얀(김형서)을 괴롭히고 있는 명훈에게 돌로 머리를 내려쳐 상처를 내는 사고를 냄으로서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는 장면에서부터 시작된다.
어느 날 지난번의 머리타격 사건을 빌미로 연규는 명훈의 조직에 의해 집단테러를 당하게 되고, 사고 합의금이 필요한 연규에게 치건(송준기)는 300만원을 건네줌으로서 이를 계기로 연규는 치건의 조직에서 새로운 삶을 살고 싶어 한다.
술에 만취한 아버지는 방으로 야구방망이를 들고 와 때리려 하자 연규는 놀라 도망가지만 피하지 못하고 무자비하게 맞는다. 몽둥이로 맞은 얼굴의 상처로 인해 중국집에서 해고를 당하게 되고, 치거가 일하고 있는 조직으로 달려가 치거에게 돈 벌수 있게 해달라고 애원하지만 거절당한다.
어느 날 사무실에서 치건이 요리한 생선탕을 먹으며 연규의 지난날의 사정을 이야기 한다. 어렸을 때 아빠가 집을 나가고 없을 때 지금의 아빠가 김하얀을 데리고 와 엄마와 살게 되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매정하게 거절한 치거였지만 연규의 현재 처한 상황과 전후 사정을 듣고 나서는 자신과 비슷한 환경에서 자랐다는 점에 동정심이 작용한 탓인지 앞으로 형이라 부르라며 연규를 받아줌으로서 연규는 오토바이 절도범의 조직원으로 새로운 삶이 시작된다.
이들 조직에 합류한 연규는 길에 세워준 오토바이를 훔치는 도둑질 작업에 동참하게 되고, 이들 훔친 오토바이는 도색과 수리 후 번호판을 바꿔 판매하는 조직의 일원이 되지만, 끝내는 적응하지 못하고 만다.
수년전 LG TV의 광고에서 ‘순간의 선택이 십년을 좌우한다’는 카피가 상당한 인기를 끌었고 소비자들에게도 제품의 신뢰를 심어준 광고로 기억되고 있다.
새로운 삶을 찾아 희망이 있는 곳으로 가는 위한 연규의 선택이 고작 도둑질을 일삼는 조직폭력배로 선택했다는 사실에서도 이 영화는 어차피 절망적인 결말일 것을 예감해 본다.
인간은 태어나서부터 죽을 때까지 크고 작은 수많은 선택의 순간과 갈등을 맞이하게 되며. 하루에도 작게는 ‘오늘 점심 뭐 먹지’를 비롯해 잠자리에 들 때 까지 수많은 선택과 갈등의 기로에 서게 된다. 순간 순간의 선택들이 쌓이고 쌓여서 결국은 인생이 되며, 그 선택의 고비마다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인생이 좌우되는 것이다.
우리가 삶을 살아가면서 타의에 의해 선택되는 경우도 있지만 결국은 자의에 의한 선택으로 학교선택ㆍ직장선택ㆍ배우자선택ㆍ취미선택 등 자신의 인생에 엄청난 결과를 가져오는 선택과 갈등, 그리고 그에 따른 부수적인 선택을 해야 하며, 그 선택에 따라 인생의 방향은 사람마다 천지 차이로 변하게 되므로 선택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영화에는 조직폭력배와 정치인의 밀착 스캔들은 언제나 빠질 수 없는 소재라 할 수 있다. 치거의 큰형님인 중범(김종수)은 동네 재개발권을 타기 위해 자신이 미는 후보 정의석을 당선시키기 위해 상대편 후보자 이현남을 처리할 것을 지시한다.
정치 브로커이기도 한 큰형님은 정의석의 상대편 후보자 이현남을 처리할 것을 지시했을 때, 이에 대한 묘책으로 연규는 어느날 하얀이 학교 라커룸에서 명훈이가 여성용품을 꺼내는 장면을 촬영하고 전교생에게 알리겠다며 협박한 것이 생각나, 누구에게도 해를 끼지 않고 본인만 치명상을 입힐 수 있는 여자 속옷 스캔들을 만들자고 제안하지만 정의석의 후보사퇴로 그 제안은 물거품이 된다.
영화의 마무리에서, 연규는 그동안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었던 치거를 날카로운 송곳으로 살해하고, 마치 그동안 그가 그토록 열망하였던 희망이 있는 곳으로 가는 듯 하얀을 뒤에 태우고 오토바이를 달리는 것으로 끝나지만, 현실은 살인자의 이름으로 감옥행만 그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사족(蛇足)
영화 ‘화란’은 우리나라 최고의 배우 중 한명이라 할 수 있는 송중기가 주연이나 카메오가 아닌 조연으로 출연한 것이 흥미롭기도 하고 노 개런티로 출연하였다는 후문에 더욱 놀랍다. 더불어 홍사빈은 제44회 청룡영화상에서 신인남우상을 수상하는 것으로 화답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