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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선국사4

천년 고찰 비보사찰(裨補寺刹), 보광사(普光寺)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영장리의 고령산(高靈山) 기슭에 자리한 보광사(普光寺)는 894년(신라 진성여왕 8년)에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왕명으로 국가 비보사찰(裨補寺刹)로 창건하였다고 한다. 보광사는 1215년(고려 고종 2년)에 원진(元眞)이 중창하고 법민(法敏)이 목조 불보살상 5위(位)를 조성하여 대웅보존에 봉안하였고 1388년(우왕 14년)에는 무학(無學)이 중창하였으며, 그 뒤 임진왜란으로 전소되었다. 보광사는 그 후 1622년에 설미(雪眉)와 덕인(德仁)이 법당과 승당(僧堂)을 복원하였으나 6·25전쟁 때 별당 등 일부 당우가 소실되었고. 1957년에는 수각(水閣)을 건립하였고 1973년에는 주지 와운(臥雲)이 종각을 건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보전을 중심으로 원통.. 2024. 1. 17.
영원한 안식처 피안에 이르는 도피안사(到彼岸寺)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 관우리에 위치하고 있는 도피안사(到彼岸寺)는 865년(통일신라 경문왕 5년)에 도선국사(道善國師)가 향도(嚮導) 천여 명을 거느리고 산수 좋은 곳을 찾던 중 화개산(花開山) 현 위치에 창건하였다고 전해진다. 도피안사(到彼岸寺) 절 이름은 도선국사가 철조비로자나불좌상을 안양사에 봉안하기 위하여 가다 잠시 쉬던 중 불상이 갑자기 없어졌는데 현재의 위치에 그 불상이 안좌한 자세로 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 자리에 암자를 짓고, 철조불상이 영원한 안식처인 피안에 이르렀다 하여 절 이름을 도피안사로 명명하였다고 전해진다. 도피안사는 6.25전쟁 때 완전 소실되었다가 1957년에 군(軍)에서 복원하여 관리하다 1986년에 민간으로 이관되었으며, 그 후 대적광전(大寂光殿)과 삼성각을 개축하고 범종각.. 2022. 10. 10.
영조(英祖)의 효심을 간직한 보광사(普光寺)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영장리의 고령산(高靈山) 기슭에 자리한 보광사(普光寺)는 894년(신라 진성여왕 8년)에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왕명으로 창건한 국가 비보사찰(裨補寺刹)이라고 한다. 1215년(고종 2년)에는 원진(元眞)이 중창하고 법민(法敏)이 불보살상 5위(位)를 조성하여 법당에 봉안하였고 1388년(우왕 14년)에는 무학(無學)이 중창하였으며, 그 뒤 임진왜란으로 전소되었다. 보광사는 그 후 1622년에 설미(雪眉)와 덕인(德仁)이 법당과 승당(僧堂)을 복원하였으나 6·25전쟁 때 별당 등 일부 당우가 소실되었고. 1957년에는 수각(水閣)을 건립하였고 1973년에는 주지 와운(臥雲)이 종각을 건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보전을 중심으로 원통전(圓通殿)ㆍ지장전(地藏.. 2020. 2. 6.
전통적인 불교문화를 보존ㆍ전수하는 봉원사(奉元寺) 서울 서대문구 봉원동에 위치한 봉원사(奉元寺)는 태고종(太古宗)의 총본산으로, 서기 889년(신라 진성여왕 3년)에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연희궁터에 처음 창건하여 반야사(般若寺)로 불렀다고 한다. 고려 말 보우(普愚)스님은 반야사를 증축하고 수리하여 아름답게 꾸몄다고 하며. 그 후 여러 차례 중창과 중건에 거쳐 1748년(영조 24년)에 왕실에서 절 지을 장소를 하사하여 찬즙(贊汁)ㆍ증암(增岩) 두 스님에 의해 지금의 장소로 이전하였으며 그 이듬해에 국왕이 봉원사(奉元寺)라는 어필(御筆)을 내렸다고 한다. 봉원사는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단청(丹靑)과 범패(梵唄)의 맥을 잇고 있는 스님들이 기거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며, 전통적인 불교문화를 그대로 보존ㆍ전수하고 있는 사찰이라고 한다. 당시 사람들은 동국(東.. 2019. 5.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