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4소문3

조선시대 시구문(屍口門), 광희문(光熙門) 서울 중구 퇴계로에 위치한 광희문(光熙門)은 동대문과 남대문 사이인 남동쪽에 세운 서울 성곽의 4소문 중 하나로 남소문(南小門)이라고도 부르며, 서소문과 함께 시신을 내보내던 시구문(屍口門)이었다. 광희문(光熙門)은 1396년(태조 5년)에 도성을 쌓을 때 동대문과 남대문 사이인 남동쪽에 세운 것으로, 1711년(숙종 37년)에 고쳐 쌓았고 1719년(숙종 45년)에 석축 위에 문루를 짓고 '광희문(光熙門)'이라는 현판을 걸었다. 광희문은 수구문(水口門)ㆍ시구문(屍軀門)이라고도 하며 소의문(서소문)과 더불어 한양시민들이 죽으면 상여에 싣고 운구 할 수 있는 저승 문이었으며, 조선조 500년간 시신(屍身)은 반드시 이 두 문중 하나를 거쳐 나갈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때 광희문 밖은 시.. 2023. 11. 21.
한양도성 4소문(小門)의 하나, 혜화문(惠化門) 서울 종로구 혜화동에 위치한 혜화문(惠化門)은 속칭 동소문으로 불리는 문(門)으로 동대문과 숙정문 사이에 위치하였으며, 함경도 등의 북방으로 통하는 경원가도(京元街道)의 관문 역할을 하였다. 혜화문은 동소문동에서 혜화동으로 넘어가는 고개에 자리한 한양도성 4소문(小門) 중 하나였으나 일제 때 헐리고 도로가 되었으며, 지금의 혜화문은 원 위치인 도로에서 조금 떨어진 북쪽 위치에 1994년 말에 복원하였다 혜화문은 1396년(태조 5년)에 한양도성을 축조하고 이곳에 성문을 낼 때 홍화문(弘化門)이라는 이름으로 세워졌으나, 창경궁을 새로 건립하면서 그 정문을 홍화문이라고 명명한 까닭에 도성 동쪽에 위치하였기 때문에 동소문으로 불렀으며 1511년(중종 6년)에 동소문을 혜화문이라고 고쳐 부르게 하였다. 1744.. 2023. 3. 30.
서울성곽 4소문(小門) 중 옛 모습을 간직한 창의문(彰義門) 서울 종로구 청운동에 자리한 창의문(彰義門)은 서울 성곽의 4소문(小門) 중 하나로 일명 자하문(紫霞門)이라고도 부르며, 1396년(태조 5년)에 도성 8문(門) 중 하나로 창건되었다. 창의문은 정면 3칸 측변 2칸의 우진각 지붕건물이며 4소문 중에서 유일하게 조선시대에 지어진 전형적인 성곽 문루(門樓)의 모습으로 완전히 남아있는 성문(城門)으로 보물 제1881호로 지정되어 있다. 조선시대 서울성곽에는 동서남북에 4대문을 두고 그 사이에 4소문을 두었는데, 창의문은 서대문과 북대문 사이에 둔 북소문(北小門)으로 인왕산과 백악산이 만나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창의문(彰義門)은 ‘올바른 것을 드러나게 하다’라는 뜻이 있으며, 북소문(北小門)으로 불리지는 않았으며 이곳 계곡의 이름을 빌어 자하문(紫霞門)이라는.. 2021. 9.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