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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양호2

포탄자국이 남아있는 강화 초지진(草芝鎭) 인천시 강화군 길상면 초지리에 자리한 초지진(草芝鎭)은 해상으로부터 침입하는 외적을 막기 위하여 1656년(효종 7년)에 설치한 요새이며, 안산의 초지량에 수군의 만호영(萬戶營)이 있었던 것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안산에 있던 초지량영은 1666년에 강화로 옮겨 진(鎭)으로 승격시켰으며, 진에는 배 3척을 비롯하여 초지돈ㆍ장자평돈ㆍ섬암돈의 세 군데 돈대(墩臺)를 거느리고 있었다. 초지진은 병인양호ㆍ신미양호ㆍ운양호 사건 등으로 허물어져 돈대의 터와 성의 기초만 남아 있었으나 1973년에 초지돈을 복원하였으며, 현재 타원형의 돈대에는 포좌 3개ㆍ총좌 100여개 그리고 실제 조선시대 말기에 사용하였던 대포 1문이 전시되어 있다 초지진은 사적 제225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복원된 성축과 홀로 남은 노송(老松)에.. 2022. 7. 29.
조선말 외세침략의 격전지, 초지진(草芝鎭) 인천시 강화군 길상면 초지리에 자리한 초지진(草芝鎭)은 해상으로부터 침입하는 외적을 막기 위해 1716년(숙종 42년)에 설치한 돈대(墩臺)로, 사적 제225호로 지정되어 있다. 1866년(고종3년)에는 천주교 탄압을 구실로 프랑스의 극동함대 로즈(Roze) 사령관이 침입하여 병인양요(丙寅洋撓)가 일어났으며, 1871년(고종8년)에는 통상(通商)을 강요하며 미국의 아시아함대 로저스(Rodgers) 사령관이 내침하여 신미양요(辛未洋撓)가 발생하였다. 또한, 1875년(고종12년)에 침공한 일본군함 운양호(雲揚號)를 맞아서도 치열한 격전을 벌인 격전지이다. 1876년(고종13년)의 운양호의 침공 때에는 강압적인 강화도 수호조약의 체결을 가져옴으로써 일본침략의 문호가 개방되었던 곳이기도 하다. 초지진 앞에 있.. 2018. 8.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