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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릉24

조선 최대의 왕릉군(王陵群), 동구릉(東九陵)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에 위치한 동구릉(東九陵)은 조선 최대의 왕릉군(王陵群)으로 9릉(陵) 17위(位)의 왕과 왕비, 그리고 후비(后妃) 등이 안장되어 있는 조선왕릉이다. 동구릉은 1408년(태종 8년)에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건원릉(健元陵) 터로 쓰이기 시작한 뒤로, 조선시대 일대를 통해 족분(族墳)을 이루고 있으며 사적 제193호로 지정되어 있다. 동구릉은 태조(太祖)의 건원릉(健元陵)을 시작으로 문종(文宗)의 현릉(顯陵), 선조(宣祖)의 목릉(穆陵), 현종(顯宗) 숭릉(崇陵), 장렬왕후(莊烈王后) 휘릉(徽陵), 단의왕후(端懿王后) 혜릉(惠陵), 영조(英祖) 원릉(英祖), 헌종(憲宗) 경릉(景陵)이 차례로 조성되었으며 당시 능의 개수에 따라 동오릉ㆍ동칠릉 등으로 불리다 1855년 문조(文祖)의.. 2023. 9. 28.
영릉ㆍ순릉ㆍ공릉이 자리한 파주 삼릉(坡州 三陵) 경기도 파주시 조리읍 봉일천리에 자리한 파주 삼릉(坡州 三陵)은 공릉(恭陵)ㆍ순릉(順陵)ㆍ영릉(永陵)의 3능이 있는 곳으로, 왕릉군의 앞머리를 따서 공순영릉(恭順永陵)으로도 불린다. 영릉(永陵)은 영조(英祖)의 장자로 황제로 추존된 진종(眞倧)과 그의 비(妃) 효순황후(孝純皇后) 조씨(趙氏)의 능으로, 세자와 세자빈의 예로 조성되었기 때문에 매우 간소하고 아담하며 왕릉(王陵)과 비릉(妃陵)을 나란히 한 쌍릉(雙陵)으로 곡장을 둘렀다. 진종(眞倧)은 영조의 아들이며 처음 경의군(敬義君)으로 봉해졌다가 영조가 즉위한 이듬해 1725년(영조 1년)에 왕세자로 책봉되었으나 1728년(영조 4년)에 10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영조는 왕세자에게 효장세자(孝章世子)라는 시호를 내렸고 이곳에 묘를 조성하였으며, .. 2023. 6. 30.
태조비 신덕왕후 강씨(神德王后 康氏)의 능, 정릉(貞陵) 서울 성북구 정릉동에 위치한 정릉(貞陵)은 조선 태조 이성계의 두 번째 아내이면서 조선 최초의 왕비인 신덕왕후 강씨(神德王后 康氏)의 능(陵)이다. 정릉은 1409년(태종 9년)에 처음 조성한 후 1669년(현종 10년)에 다시 조성한 단릉 형식이며 능침에는 문석인ㆍ석마ㆍ장명등ㆍ혼유석ㆍ망주석ㆍ석양ㆍ석호를 배치하였다. 정릉은 일반 조선왕릉과 달리 직선축이 아닌 자연 지형에 맞추어 절선축으로 조성되었으며, 능침아래에는 홍살문ㆍ정자각ㆍ수복방ㆍ수라간ㆍ비각 등이 있다. 정릉의 장명등과 혼유석을 받치는 고석만이 조성 당시의 것이고 나머지 석물들은 현종 대에 다시 조성하였으며, 장명등은 고려 공민왕릉의 양식을 따른 것으로 조선시대 능역의 가장 오래된 석물인 동시에 예술적 가치가 높다고 한다. 신덕왕후가 1396년(태.. 2023. 1. 18.
사도세자 장조와 헌경왕후 혜경궁 홍씨의 능, 융릉(隆陵) 경기도 화성시 안녕동에 자리한 융릉(隆陵)은 사후 왕으로 추존된 장조((莊祖)와 그의 비(妃)인 혜경궁 홍씨 헌경왕후(獻敬王后)의 합장릉으로 사적 제206호이다. 장조의 무덤은 원래 경기도 양주의 배봉산(서울 휘경동) 아래에 있었는데 정조가 수원화산으로 이장하면서 현륭원(顯隆園)이라 하였고, 장조로 추존된 후에는 능호를 융릉(隆陵)으로 높였다. 장조는 1735년(영조 11년)에 창경궁에서 태어나 그 이듬해에 세자에 책봉되었고 1749년(영조 25년) 부왕을 대신하여 대리청정을 하다가 정치적 견해를 달리하는 노론들과 정순왕후 등의 무고에 의해 1762년(영조 38년)에 뒤주 속에 갇혀 세상을 떠났다. 영조는 세자의 죽음을 애도하는 의미로 사도(思悼)라는 시호를 내렸고 묘호를 수은묘(垂恩廟)라 하였으며, 정.. 2022. 9. 15.
정조와 효의왕후의 능, 건릉(健陵) 경기도 화성시 안녕동에 자리한 건릉(健陵)은 정조(正祖)와 효의왕후(孝懿王后)의 동릉이실(同陵異室) 합장릉이며, 병풍석 없이 난간만 두르고 그 밖의 모든 것은 융릉(隆陵)의 예를 따랐다. 건릉은 원래 생부인 장헌세자(莊獻世子)의 현릉원 동쪽에 능을 조성하였던 것을 풍수지리적으로 좋지 않다고 하여 1821년에 현재의 위치에 이장하여 효의왕후를 합장하였다. 건릉은 합장릉이지만 혼유석(魂遊石) 1좌만 놓았고 장명등(長明燈)을 세웠으며, 문무석의 조각이 사실적이고 안정감이 있는 빼어난 작품으로 19세기 능석물제도(陵石物制度)의 새로운 표본을 세웠다고 한다. 건릉은 동ㆍ서ㆍ북 3면에 곡장(曲墻)에 병풍석을 두르지 않고 난간석만 둘렀으며, 석물은 난간석 바깥으로 석호와 석양을 각각 4기씩 배치하여 봉분을 호위하고 .. 2022. 9. 14.
서삼릉(西三陵)의 희릉(禧陵)과 예릉(睿陵)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원당동에 위치한 서삼릉(西三陵)에는 희릉(禧陵)ㆍ예릉(睿陵)ㆍ효릉(孝陵)의 삼릉(三陵)과 의령원(懿寧園)ㆍ효창원(孝昌園)ㆍ소경원(昭慶園), 그리고 회묘(懷墓) 등 후궁 묘역과 왕족 태실군 등이 있다. 서삼릉은 단일지역으로는 조선시대 가장 많은 왕실 묘소가 자리해 있는 묘역이며, 인조의 효릉과 소경원은 출입금지구역이고, 회묘 등 후궁 묘역과 왕족 태실은 예약으로 관람할 수 있다. 희릉(禧陵)은 중종(中宗)의 두 번째 왕비인 장경왕후(章敬王后) 윤씨의 능으로, 처음에는 태종의 헌릉 서쪽 언덕에 조성되었다가 1537년(중종 32년)에 현재의 자리로 옮겼다고 한다. 중종이 1544년에 세상을 떠나자 희릉 옆 언덕(현 철종 예릉 자리)에 중종의 능이 조성되어 정릉(靖陵)이 되었으나, 1562.. 2022. 6. 7.
서삼릉(西三陵)의 후궁 묘역과 왕족 태실(胎室)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원당동에 위치한 서삼릉(西三陵)은 단일지역으로는 조선시대의 가장 많은 왕실 묘소가 위치해 있는 묘역이며,인조대왕의 효릉은 아직도 출입금지구역이다. 서삼릉에는 예릉(睿陵)ㆍ희릉(禧陵)ㆍ효릉(孝陵)의 삼릉(三陵)과 소경원(昭慶園)ㆍ의령원(懿寧園)ㆍ효창원(孝昌園) 등이 있으며 그리고 비공개지역인 회묘(懷墓) 등 후궁 묘역과 왕족 태실군 등은 예약으로 관람할 수 있다. 회묘(懷墓)는 성종(成宗)의 계비(繼妃)이면서 연산군의 생모인 폐비 윤씨의 묘이며, 원래는 경기도 장단군에 묻힌 것을 연산군이 서울 동대문구 회기동으로 천장(遷葬)하였으며 이후 1969년에 현재의 자리로 옮겼다고 한다. 연산군이 즉위한 후 묘의 이름을 폐비지묘(廢妃之墓)에서 회묘라 하고 윤씨의 제사를 허락하였으며, 1504년.. 2022. 6. 3.
순종황제와 순명황후ㆍ순정황후의 유릉(裕陵)과 영원(英園)ㆍ회인원(懷仁園) 경기도 남양주시 금곡동에 자리한 유릉(裕陵)은 대한제국의 순종황제와 그의 비(妃) 순명황후 민씨(純明皇后 閔氏)와 계비(繼妃) 순정황후 윤씨(純貞皇后 尹氏)의 능으로, 조선왕릉 중 유일하게 세 분이 합장된 능이다. 유릉(裕陵)은 홍릉과 합칭(合稱)하여 홍유릉(洪裕陵)이라 불리며, 인근에는 영원(英園)ㆍ회인원(懷仁園)을 비롯하여 덕혜옹주묘ㆍ의친왕묘 등 대한제국 마지막 왕손들의 무덤이 있다. 유릉은 홍릉과 마찬가지로 왕이 황제가 됨으로써 능역 조성도 명(明)나라 태조의 효릉(孝陵)을 본받아 구조물을 대폭 확장하였으며, 종래의 정자각 대신 '一'자형의 정면 5칸 측면 4칸의 침전(寢殿)을 세웠다. 능침의 호석(護石)인 양석(羊石)ㆍ호석(虎石) 대신 능침 앞에서부터 홍살문까지 기린ㆍ코끼리ㆍ해태ㆍ사자ㆍ낙타ㆍ말의 .. 2021. 7. 23.
고종(高宗)과 명성황후의 홍릉(洪陵) 경기도 남양주시 금곡동에 자리한 홍릉(洪陵)은 고종(高宗)과 그의 비(妃) 명성황후 민씨(明成皇后 閔氏)의 능이며, 옆에 있는 유릉(裕陵)과 합칭(合稱)하여 홍유릉(洪裕陵)이라 불리며 사적 제207호로 지정되었다. 고종은 1919년에 홍릉(洪陵)에 초장 봉릉(初葬 封陵)되었으며, 명성황후는 1895년에 청량리 홍릉(현재 숭인원)에 장사하였다가 1919년에 현재의 홍릉으로 이장하여 합장(合葬)한 동봉이강릉(同封異岡陵)이다. 홍릉의 특징은 조선이 대한제국으로 선포되고 왕이 황제가 됨으로써 능역 조성도 명(明)나라 태조의 효릉(孝陵)을 본받아 구조물을 대폭 확장하였으며, 종래의 정자각 대신 '一'자형의 정면 5칸 측면 4칸의 침전(寢殿)을 세웠다. 능침의 호석(護石)인 양석(羊石)ㆍ호석(虎石) 대신 능침 앞에.. 2021. 7. 22.
봄비 내리는 날의 파주 삼릉(坡州 三陵) 경기도 파주시 조리읍 봉일천리에 자리한 파주 삼릉(坡州 三陵)은 공릉(恭陵)ㆍ순릉(順陵)ㆍ영릉(永陵)의 3능이 있는 곳으로, 왕릉군의 앞머리를 따서 공순영릉(恭順永陵)으로도 불린다. 공릉(恭陵)의 장순왕후(章順王后)와 순릉(順陵)의 공혜왕후(恭惠王后)는 모두 한명회(韓明澮)의 딸이며, 왕실로 출가한 두 사람이 함께 생활하지는 못하였으며 단명하였다. 공릉(恭陵)은 1472년(성종3년)에 왕후로 추존된 조선 예종(睿宗)의 원비 장순왕후(章順王后) 한씨(韓氏)의 능으로, 처음에는 왕후릉이 아닌 세자빈묘로 조성되었기 때문에 소박하며, 병풍석ㆍ난간ㆍ망주석ㆍ무인석(武人石) 등이 없다. 공릉은 아래쪽의 홍살문에서 정자각에 이르는 참도(參道)가 조선 왕릉 가운데 유일하게 ㄱ자로 꺾여 있는 것이 특징이며, 지형조건 때문.. 2021. 5. 18.
단종(端宗) 비(妃) 정순왕후(定順王后)의 사릉(思陵)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면 사릉리에 자리한 사릉(思陵)은 조선 단종(端宗)의 비(妃) 정순왕후(定順王后) 송씨(宋氏)의 능(陵)으로, 단종을 평생 그리워하며 살았다 하여 능의 이름을 사릉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사릉은 대군부인(大君夫人)의 예로 장사지낸 뒤 나중에 왕후의 능으로 추봉(追封)되었기 때문에 다른 능에 비해 조촐하며, 주변이 소나무 숲으로 둘러져 있어 전체적으로 아늑하고 단아한 느낌을 준다. 사릉은 현재 오는 2021. 8. 13까지 수복방 및 수라청 복원공사를 실시하고 있어서 주변이 다소 어수선한 분위기이기도 하다. 사릉의 정자각(丁字閣)은 맞배지붕으로 배위청이 짧아 전체 건물모습이 정사각형이라는 느낌이며, 다른 왕릉은 홍살문에서 참도(參道)를 통해 정자각으로 들어가지만 이곳 참도는 정자각까.. 2021. 4. 30.
광해군 생모의 묘인 성묘(成墓)와 광해군묘(光海君墓)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 송능리에 자리한 성묘(成墓)는 선조(先祖)의 후궁이면서 광해군(光海君)의 생모인 공빈 김씨(恭嬪 金氏)의 묘소이며, 왕릉제도로 조성되어 있다. 묘역에는 병풍석을 생략하고 곡장(曲牆)을 둘렀으며, 봉분 주위에 난간석(欄干石)ㆍ석호(石虎)ㆍ석양(石羊) 등이 있으며, 봉분 전면에는 혼유석(魂遊石)ㆍ장명등(長明燈)ㆍ망주석(望柱石)ㆍ문인석(文人石)ㆍ무인석(武人石)ㆍ석마(石馬) 등이 있다. 공빈 김씨(恭嬪 金氏)가 광해군 3살 때인 1577년(선조 10년)에 세상을 떠나자 풍양 조씨 시조 묘소 뒤인 현재의 자리에 묘소를 조성하였고, 이후 공빈 김씨가 공성왕후로 추존되자 묘를 능으로 추봉하고 석물을 다시 조성하였다. 공빈 김씨가 1610년(광해군 2년)에 공성왕후(恭聖王后)로 추존되면서 성릉(.. 2021. 4.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