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김포시 풍무동에 위치한 장릉(章陵)은 사후 왕으로 추존된 원종(元宗)과 그의 비(妃)인 인헌왕후(仁獻王后)를 모신 쌍릉(雙陵)이며 사적 제202호이다.
장릉의 봉분(封墳)은 병풍석과 난간석 없이 봉분 주위를 둘러막는 조금 낮은 듯한 호석(護石)만을 두르고 있으며, 이는 왕위를 오르지 않은 왕의 아버지(대원군)의 묘제를 따른 것이라고 한다.
홍살문에서 정자각까지 이르는 길인 참도(參道)가 다른 능과는 달리 약간의 경사진 계단식 형태인 것은 정자각이 상대적으로 조금 높은 곳에 지어졌기 때문이며, 능원 밑에는 정자각ㆍ비각ㆍ수복방(守僕房)ㆍ홍살문, 그리고 장릉 입구에 재실이 있다.
봉분 주위에는 석양(石羊)ㆍ석호(石虎) 각 2쌍을 교대로 배치하였으며, 봉분 뒤쪽으로는 3면의 곡장(曲墻)을 둘렀고 봉분 아랫단에는 문인석ㆍ석마(石馬) 각 1쌍과 장명등, 그 아랫단에 무인석ㆍ석마 각 1쌍이 있다.
원종(元宗)은 선조(宣祖)의 다섯째 아들이며 인조(仁祖)의 아버지인 정원군(定遠君)으로, 1619년 사망할 때는 군(君)의 신분이었으므로 남양주시 금곡동의 처갓집 선산에 초라하게 묻혀 있었다.
이후 아들 능양군이 인조(仁祖)가 되자 원종으로 추존되었으며, 묘도 원(園)으로 추승 되어 흥경원(興慶園)이라 하였고, 이후 원종의 무덤은 현재의 자리인 김포시로 옮겨지면서 장릉(章陵)이 되었다.
인헌왕후(仁獻王后)는 구사맹(具思孟)의 딸로 1590년에 정원군과 혼인하여 연주군부인(連珠郡夫人)으로 봉해졌으며, 1623년에 아들이 보위에 오르면서 연주부부인(連珠府夫人)이 되었으며 궁호를 계운궁(啓運宮)이라 하였다.
연주부부인(連珠府夫人)은 1626년(인조 4년)에 4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 김포 성산 언덕에 예장하였다가, 1632년에 인헌왕후로 추존되었으며 원종의 능인 현재 자리로 천장(遷葬)하였다.
정자각 동쪽에 자리한 비각(碑閣)은 비석을 보호하기 위한 보호각으로, 비문을 통해 능의 주인공과 그의 생전의 행적을 알 수 있다.
홍살문 안의 비면에는 ‘조선국 원종대왕 장릉 인헌왕후 부좌(朝鮮國元宗大王章陵 仁獻王后附左)’라고 쓰여 있으며, 1753년(영조 29년)에 세워졌다.
홍경원을 1632년에 장릉으로 격상하면서 종전에 있던 석물들 중 사용하지 않은 일부를 능 좌측 언덕에 묻었는데, 세월이 지나면서 비석 받침돌이 지상으로 노출되어 이 자리로 옮겨서 보관하는 것이라고 한다.
재실(齋室)은 왕릉의 수호와 관리를 위하여 능참봉(陵參奉)이 상주하던 곳으로, 제례 시에는 제관들이 머물면서 제사에 관련된 전반적인 준비를 하던 공간이다.
이 건물은 원종(元宗)과 인헌왕후(仁獻王后)의 제향을 준비하던 재실이며, 능참봉(陵參奉)의 집무실인 재실을 비롯하여 향과 축문을 보관하는 안향청(安香廳), 제기를 보관하는 제기고(祭器庫)와 그 외 부속공간인 행랑(行廊)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부분의 조선왕릉에 나무숲길이 꾸며져 있듯 장릉에도 0.9km의 관람로 숲길과 1.2km 나무숲 산책로, 그리고 연지(蓮池)ㆍ저수지 등이 조성되어 있다.
상큼한 나무 숲길을 따라 자연을 즐기며 산책하기 좋은 곳이며, 또한 숲길 곳곳에는 물봉선화 등 다양한 야생화를 만날 수 있다.
물봉선화는 봉선화과의 한해살이풀이며 전국 각지의 산과 들의 습지에 자생하고 높이 60cm 정도로 자란다.
물봉선화 꽃은 8~9월에 줄기 끝과 가지 위쪽에 총상 꽃차례를 이루며 달리며 홍자색으로 모두 3개의 꽃잎으로 피는데 작은 꽃자루와 꽃대가 아래를 향하여 굽는다.
큰 꽃잎은 좌우 양쪽에 길이 3cm 정도이고 자주색 반점이 있고 끝이 안쪽으로 말리며 수술은 5개이고 암술은 1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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