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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경기도

경주를 벗어난 유일한 신라 왕릉, 연천 경순왕릉(敬順王陵)

by kangdante 2025. 3.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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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연천군 장남면 고랑포리에 위치한 경순왕릉(敬順王陵)은 신라 마지막 제56대 경순왕(敬順王)의 능으로, 신라 왕릉 가운데 경주지역을 벗어나 경기도에 있는 유일한 신라 왕릉이라고 한다.

 

경순왕릉은 고랑포 나루터 뒤편의 남방한계선과 인접한 나지막한 구릉의 정상부 쪽에 단독으로 자리하고 있으며, 왕릉의 전체적인 형태는 조선후기 사대부 묘소의 전형적인 격식을 보여주고 있다.

 

 

경순왕릉은 높이 3m 지름 7m의 둥글게 흙을 쌓아올린 원형 봉토분(封土墳)으로 판석(板石)을 이용해 둘레돌을 돌렸으며, 고려시대 왕릉에서 나타나기 시작한 곡장(曲墻)이 둘려져 있고, ()이 조성되어 있을 뿐 주변의 석물들은 모두 조선 영조 때 만든 것이라고 한다.

 

능 앞에 혼유석(魂遊石)이 놓여있고 신라경순왕지릉(新羅敬順王之陵)’이라고 새긴 묘비가 세워져 있으며, 뒷면에 있는 비문의 내용에 의하여 경순왕의 무덤임이 확인되었으며 1747(영조 23)에 이 비를 세운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경순왕릉은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잊혀졌던 것을 1747(영조 23)에 후손들이 왕릉 주변에서 묘지석(墓誌石)을 발견하여 되찾았다고 한다.

 

따라서 경순왕릉은 조선후기의 양식으로 재정비되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으며, 19756월에 대한민국 사적 제244'신라 경순왕릉'으로 지정되었다가 20117월에 '연천 경순왕릉(漣川 敬順王陵)'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경순왕릉(敬順王)은 신라 마지막 왕으로 성은 김() 이름은 부()이며, 신라 문성왕의 후손으로 927년 경애왕이 후백제 견훤의 습격을 받아 사망한 후 왕위에 올랐다.

 

경순왕 즉위 당시에는 나라가 후백제고려신라로 분열되어 있었고, 후백제의 잦은 침입과 각 지방 호족들의 할거로 국가기능이 마비된 상태였으며 이에 민심도 신흥 고려에 기우러지고 있었다.

 

 

경순왕은 무고한 백성들이 더 이상 괴롭힘 당하는 것을 막기 위해 신하들과 큰 아들 일()의 반대를 무릅쓰고 고려 왕건에게 평화적으로 나라를 넘겨준 후 왕위에서 물러났으며, 이후 태자 일()은 금강산으로 들어가 마의(麻衣)를 입고 풀뿌리와 나무껍질을 먹으면서 지냈다고 하여 마의태자(麻衣太子)로 불린다.

 

고려에 귀부한 경순왕은 태자보다 높은 지위인 정승공(正承公)에 봉해지는 한편, 태조 왕건의 딸 낙랑공주와 결혼하여 여러 자녀를 두었으며 귀부한지 43년 후인 978년에 세상을 떠났다.

 

 

왕릉의 주변에는 1986년에 건립된 정면 3칸 측면 1칸 맞배지붕의 재실과 경순왕의 것으로 추정되는 신도비가 비각 안에 놓여 있으나, 비의 마모상태가 심하여 현재 한쪽 면의 몇 개의 문자만 판독이 가능할 정도로 내용은 전혀 알 수 없다고 한다.

 

경순왕신도비는 고랑포구 주변에 방치되어 있던 것을 1976년 고랑포 초등학교로 옮겨 놓았다가, 후손들이 발견한 신도비로 추정되어 1986년 비각을 짓고 이곳으로 옮겨 놓은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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