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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경기도

고려(高麗) 마지막 왕의 능(陵), 공양왕릉(恭讓王陵)

by kangdante 2018. 11.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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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원당동에 자리한 공양왕릉(恭讓王陵)

고려의 마지막 왕인 고려 34대 공양왕(恭讓王)과 그의 비()인 순비 노씨(順妃 盧氏)의 능으로,

정면에서 보았을 때 왼쪽이 왕 오른쪽이 왕비의 봉분(封墳)이다.

 

이 능은 왕과 왕비를 쌍릉(雙陵) 형식으로 모셨으며,

능 앞에는 비석 1기와 상석이 놓여있고 팔각 모양의 장명등(長明燈) 1기가 서 있으며, 무덤 양쪽에는 문신과 무신 상이 세워져 있다.

석물의 양식과 수법이 간략하고 소박해서 고려 여러 왕릉의 전통적인 모습을 지니고 있다.

 

 

1392년 조선이 건국되자 공양왕은 재위 3년 만에 고려의 멸망과 더불어 폐위되어 원주로 쫓겨 갔다가

간성군(杆城郡)으로 추방되면서 공양군(恭讓君)으로 강등되었고 1394년에 삼척부로 옮겨졌다가 50세에 사사(賜死)되었으며,

이후 1416(태종16)에 다시 왕으로 복원되어 무덤도 왕릉이 되었다.

 

 

공양왕은 재위 3년 동안 정치경제문화교육 등 사회전반에 걸친 몇 차례의 제도개편을 단행하였으나,

이것은 이성계 등 신진사대부들이 자기들 세력을 부식하기 위한 개혁일 뿐이었다고 한다.

 

배불숭유론(排佛崇儒論)에 의한 주자가례(朱子家禮)를 시행해 집집마다 가묘(家廟)를 세워 음사(淫祀)를 근절시키고,

오교양종(五敎兩宗)을 없애고 사찰의 재산을 몰수하여 각 관사에 분속시켰다.

 

 

공양왕릉은 이곳 고양시 원당동과 유배지이면서 사사지(賜死地)였던 강원도 삼척시에도 있으므로

어느 쪽이 진짜 공양왕릉인가에 대해 논란이 계속되고 있으나,

조선왕조실록 등에 공양왕릉이 고양(高揚)지역에 있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고 한다.

 

 

공양왕릉 뒤에는 왕릉 외에 몇 구의 봉분들이 더 있는데,

안내문에 따르면 공양왕의 외손들인 정씨(鄭氏)씨와 신씨(申氏)들의 무덤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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