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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대6

포탄자국이 남아있는 강화 초지진(草芝鎭) 인천시 강화군 길상면 초지리에 자리한 초지진(草芝鎭)은 해상으로부터 침입하는 외적을 막기 위하여 1656년(효종 7년)에 설치한 요새이며, 안산의 초지량에 수군의 만호영(萬戶營)이 있었던 것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안산에 있던 초지량영은 1666년에 강화로 옮겨 진(鎭)으로 승격시켰으며, 진에는 배 3척을 비롯하여 초지돈ㆍ장자평돈ㆍ섬암돈의 세 군데 돈대(墩臺)를 거느리고 있었다. 초지진은 병인양호ㆍ신미양호ㆍ운양호 사건 등으로 허물어져 돈대의 터와 성의 기초만 남아 있었으나 1973년에 초지돈을 복원하였으며, 현재 타원형의 돈대에는 포좌 3개ㆍ총좌 100여개 그리고 실제 조선시대 말기에 사용하였던 대포 1문이 전시되어 있다 초지진은 사적 제225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복원된 성축과 홀로 남은 노송(老松)에.. 2022. 7. 29.
제단처럼 정방형의 독특한 형태, 강화 후애돈대(後崖墩臺)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 선두리에 위치한 후애돈대(後崖墩臺)는 1679년(숙종 5년)에 강화유수 윤이제(尹以濟)가 강화 해안방어를 목적으로 함경도ㆍ황해도ㆍ강원도 삼도의 승군(僧軍) 8,900명과 어영군(御營軍) 4,300명을 동원하여 80일 만에 축성한 돈대 중 하나라고 한다. 후애돈대의 형태는 화강암을 정방형으로 쌓고 4개의 대포를 올려놓는 포좌를 설치하였으며, 성 위로 낮게 쌓은 여장(女墻)의 일부만 남아 있었는데 없어진 부분을 1998년에 복원하였다고 한다. 돈대(墩臺)는 적의 움직임을 살피거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하여 영토 내 접경지역이나 해안지역의 감시가 쉬운 곳에 설치하는 초소로, 강화 돈대는 섬 전체에 마치 톱니바퀴처럼 둘러쌓은 진지로써 총 53개(2개소는 후에 폐쇄)의 돈대를 설치ㆍ관리하였다.. 2020. 6. 3.
강화해안 외곽초소 겸 포대, 용두돈대(龍頭墩臺) 인천시 강화군 불은면 덕성리에 위치한 용두돈대(龍頭墩臺)는 용머리처럼 돌출한 자연 암반 위에 설치된 천연적인 외곽초소 겸 포대였다고 한다. 돈대 입구에는 해안을 수비하던 광성포대가 위치하고 있으며, 중앙에는 강화전적지정화기념비(江華戰蹟地淨化記念碑)와 함께 기념비 양 옆에는 당시에 사용하였다는 홍이포(紅夷砲) 2문이 전시되어 있다. 용두돈대는 광성보(廣城堡)에서 해안숲길을 따라가다 보면 수심이 가장 빠르고 폭이 좁은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1679년에 세워져 병인양요와 신미양요 때 치열한 포격전이 전개되었던 곳이라 한다. 용두돈대는 손돌목 돈대에 속해 있으며, 1871년(고종 8년)에 광성포대가 설치되면서 정비되었으며, 이후 1977년에 강화전적지 보수사업으로 성벽을 복원하면서 용두돈대라 부르게 되었다. 2020. 5. 8.
신미양요의 격전지, 강화 손돌목돈대 인천시 강화군 불은면 덕성리에 위치한 손돌목돈대는 강화해협을 지키는 해안가의 중요한 방어시설 중 하나로, 현재 광성보(廣城堡)에 속해있는 3개의 돈대 중 하나이다. 손돌목돈대는 1679년(숙종 5년)에 축조된 돈대로, 원래 덕진돈대와 함께 덕진진에 소속되어 있었으나 현재는 광성보 내에 위치해 있다. 손돌목돈대는 구릉 정상부에 위치해 있으며, 다른 돈대와는 달리 둥그렇게 쌓인 돈대이며 돈대 중앙에 3칸의 무기고가 있었고 포좌 3개가 있었다고 한다. 손돌목돈대는 성곽 길이 108m 넓이 778㎡ 규모이며, 1871년(고종 8년) 신미양요 때에는 미국 해군과 치열한 백병전이 벌어졌던 현장이기도 하다. 손돌목돈대는 특히, 신미양요 전투 때 조선군 사령관인 어재연 장군이 직접 지휘하며 격렬하게 반격을 가하던 요새.. 2020. 5. 7.
조선말 외세침략의 격전지, 초지진(草芝鎭) 인천시 강화군 길상면 초지리에 자리한 초지진(草芝鎭)은 해상으로부터 침입하는 외적을 막기 위해 1716년(숙종 42년)에 설치한 돈대(墩臺)로, 사적 제225호로 지정되어 있다. 1866년(고종3년)에는 천주교 탄압을 구실로 프랑스의 극동함대 로즈(Roze) 사령관이 침입하여 병인양요(丙寅洋撓)가 일어났으며, 1871년(고종8년)에는 통상(通商)을 강요하며 미국의 아시아함대 로저스(Rodgers) 사령관이 내침하여 신미양요(辛未洋撓)가 발생하였다. 또한, 1875년(고종12년)에 침공한 일본군함 운양호(雲揚號)를 맞아서도 치열한 격전을 벌인 격전지이다. 1876년(고종13년)의 운양호의 침공 때에는 강압적인 강화도 수호조약의 체결을 가져옴으로써 일본침략의 문호가 개방되었던 곳이기도 하다. 초지진 앞에 있.. 2018. 8. 22.
천애(天涯) 절벽의 요새, 분오리 돈대(分五里 墩臺) 강화군 화도면에 위치한 분오리 돈대(分五里 墩臺)는 인천시 유형문화재 제36호로 1994년에 복원되었다고 한다. 분오리 돈대는 조선 숙종 5년(1676년) 강화유수 윤이제(尹以濟) 가 설치한 여러 돈대 중 하나이며, 대포 4문을 올려놓는 포좌와 톱니바퀴 모양으로 돌출시킨 치첩(雉堞)이 37개소가 있는 초지진의 외곽 포대이다... 이 돈대는 동ㆍ서ㆍ남벽은 바다에 면한 천애(天涯) 절벽의 요새(要塞)로써, 서쪽의 송곶돈대까지 거리는 3.1km로서 영문에서 돈장(墩將)을 따로두어 지키게할 만큼 중요한 돈대였다고 한다... 분오리돈대 아래에 위치한 동막해수욕장 2009. 12.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