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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인양요3

병인양요 천주교 박해, 절두산 순교성지(切頭山 殉敎聖地), 서울 마포구 합정동에 위치한 절두산 순교성지(切頭山 殉敎聖地)는 1866년 병인양요(丙寅洋擾) 때 프랑스 군이 양화진(楊花津)까지 들어오는데 도움을 주었다는 이유로 이곳에서 천주교인들을 처형한 곳이라고 한다. 절두산 성지는 한강변 언덕위에 자리 잡고 있으며 이 지역은 한강변의 최고 절경으로 유명하였던 곳으로, 원래 이름은 누에머리를 닮았다고 하여 잠두봉(蠶頭峰)를 비롯하여 용두봉(龍頭峰)ㆍ가을두(加乙頭) 등 여러 이름으로 불렸다고 한다.  절두산 순교성지는 성당 건물과 한국천주교 순교자박물관, 건물 앞마당에 김대건 신부 동상을 중심으로 성녀 마데 데리사ㆍ성(聖) 요한 바오로2세 등의 조형물, 그리고 정원처럼 꾸며져 있는 ‘십자가의 길’로 구성되어 있다. 절두산에서 처형된 천주교 신자들은 대부분 프랑스 선.. 2024. 11. 8.
절두산 순교성지와 외국인 선교사 묘원 서울 마포구 합정동의 한강변 언덕에 자리한 절두산 순교성지(切頭山 殉敎聖地)는 1866년 병인양요(丙寅洋擾) 때 프랑스 군이 양화진(楊花津)까지 들어오는데 도움을 주었다는 이유로 천주교인들을 처형하였던 곳이다. 절두산에서 처형된 천주교 신자들은 대부분 프랑스 선교사와 교류한 일이 있거나 병인양요를 일으킨 프랑스 함대와 관련 혐의가 있는 신자들이었다고 한다. 절두산에서 가장 먼저 순교한 사람은 이의송(프랑치스코)으로 그의 부인ㆍ아들과 함께 1866년에 처형당하였으며, 교회 순교록을 통해 추정되는 병인박해 당시의 절두산 순교자 수는 약 200명 내외이고 기록으로 확인 된 순교자 수는 29명이라고 한다. 이후 이곳을 절두산 성지라 불렀으며 순교 100주년인 1966년 이곳에 순교자기념관이 건립되었고, 천주교는.. 2021. 12. 14.
조선말 외세침략의 격전지, 초지진(草芝鎭) 인천시 강화군 길상면 초지리에 자리한 초지진(草芝鎭)은 해상으로부터 침입하는 외적을 막기 위해 1716년(숙종 42년)에 설치한 돈대(墩臺)로, 사적 제225호로 지정되어 있다. 1866년(고종3년)에는 천주교 탄압을 구실로 프랑스의 극동함대 로즈(Roze) 사령관이 침입하여 병인양요(丙寅洋撓)가 일어났으며, 1871년(고종8년)에는 통상(通商)을 강요하며 미국의 아시아함대 로저스(Rodgers) 사령관이 내침하여 신미양요(辛未洋撓)가 발생하였다. 또한, 1875년(고종12년)에 침공한 일본군함 운양호(雲揚號)를 맞아서도 치열한 격전을 벌인 격전지이다. 1876년(고종13년)의 운양호의 침공 때에는 강압적인 강화도 수호조약의 체결을 가져옴으로써 일본침략의 문호가 개방되었던 곳이기도 하다. 초지진 앞에 있.. 2018. 8.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