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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경기도

임진왜란의 3대 대첩지, 행주산성(幸州山城)

by kangdante 2021. 7.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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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행주내동에 위치한 행주산성(幸州山城)

해발 124.8m의 덕양산 능선을 따라 축조된 길이 약 1km의 토성(土城)으로 414m1992년에 복원하였다.

 

행주산성은 1593(선조 26) 권율장군의 전적지로써 임진왜란 3대첩의 하나인 행주대첩으로 널리 알려진 곳이며,

현재 성안에는 1603년에 세운 대첩비와 1970년에 세운 행주대첩비가 있다.

 

 

행주산성 대첩비(幸州山城 大捷碑)는 임진왜란 때

행주산성에서 9차례에 걸친 왜군의 공격을 물리친 권율(權慄) 장군의 승전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비이다.

 

1기 행주대첩비는 임진왜란이 끝난 후 1602(선조 35)에 권율 도원수의 막하에 있던 여러 장수들이

장군의 공덕을 추모하기 위해 1.88m의 대리석 행주대첩비를 건립하였으며,

행주대첩의 과정과 의의가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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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기 행주대첩비는 1845(선조 35)에 이전의 대첩비가

풍우(風雨)로 마멸되어 비문의 내용을 거의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마멸되어 판독할 수 없게 되자

행주나루터 기공사에 추가로 기록하여 세운 비석으로, 현재 충장사 앞에 이전되어 있다.

 

덕양산 정상에 세워진 현재의 행주대첩비는 1963년 경기도민이 소규모로 건립하였던 대첩비를

1970년에 지금의 웅장한 모습으로 재건한 비석으로 높이 15.2m의 화강석으로 세워져 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전라순찰사이던 권율장군은

1593(선조 26) 승장(僧將) 처영(處英)이 이끄는 승군(僧軍)을 포함한 정병 2,300여명을 거느리고 행주산성에 진주하였다.

 

우끼다 히데이에가 이끄는 3만 왜군은 행주산성을 겹겹이 포위하고 7진으로 나누어 9차례에 걸친 맹공격을 가해 왔으나

모두 패하여 적()1만 여명의 사상자를 내고 퇴진하였다고 한다.

 

 

충장사(忠莊祠)는 권율장군의 영정(影幀)을 모신 곳으로,

원래는 행주나룻터 안마을에 행주기공사(幸州紀功祠)에 있었으나 6.25전쟁 때 소실되어

1970년 행주산성 정화공사 때 이곳에 다시 지었다고 하며 코로나로 인해 현재는 출입이 금지되어 있다.

 

 

대첩기념관에는 행주대첩 당시 우리 군이 사용하였던 신기전화차 등의 무기와 대첩기록화 등이 전시되어있으나

코로나로 인해 관람이 중지되어 있다.

 

 

행주산성은 덕양산 정상부를 에워싼 소규모의 내성(內城)

북쪽으로 전개된 작은 골짜기를 에워싼 외성(外城)의 이중구조를 하고 있으며, 사적 제56호이다.

 

행주산성은 현재 성벽은 산 정상부의 동남쪽 사면과 외성부의 동북쪽 성곽뿐이며,

서쪽 방면의 내성은 확인되나 외성 성벽은 식별하기 어렵다고 한다.

 

 

행주산성을 쌓은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험한 절벽을 이용하면서 펼쳐지는 넓은 평야를 포함하고 있는 것은

삼국시대 전기의 산성 형식과 같아 삼국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보인다고 하며,

토성에서 삼국시대의 와당 및 파편이 출토되기도 하였다고 한다.

 

행주대첩은 1593(선조 26)에 왜병과의 전투에서

성 안의 부녀자들이 치마에 돌을 날라 병사들에게 공급해 줌으로써 큰 승리를 거두었으며,

당시 부녀자들의 공을 기리는 뜻에서 행주라는 지명을 따서 행주치마라고 하였다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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