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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경기도

조선 최대의 왕릉군(王陵群), 동구릉(東九陵)

by kangdante 2023. 9.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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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구리시 인창동에 위치한 동구릉(東九陵)은 조선 최대의 왕릉군(王陵群)으로 9() 17()의 왕과 왕비,

그리고 후비(后妃) 등이 안장되어 있는 조선왕릉이다.

 

동구릉은 1408(태종 8)에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건원릉(健元陵) 터로 쓰이기 시작한 뒤로,

조선시대 일대를 통해 족분(族墳)을 이루고 있으며 사적 제193호로 지정되어 있다.

 

선조(宣祖)와 첫 번째 왕비 의인왕후(懿仁王后) 박씨와 계비 인목왕후(仁穆王后) 김씨의 목릉(穆陵)

 

 

동구릉은 태조(太祖)의 건원릉(健元陵)을 시작으로 문종(文宗)의 현릉(顯陵), 선조(宣祖)의 목릉(穆陵),

현종(顯宗) 숭릉(崇陵), 장렬왕후(莊烈王后) 휘릉(徽陵), 단의왕후(端懿王后) 혜릉(惠陵), 영조(英祖) 원릉(英祖),

헌종(憲宗) 경릉(景陵)이 차례로 조성되었으며 당시 능의 개수에 따라 동오릉동칠릉 등으로 불리다

1855년 문조(文祖)의 수릉(綏陵)이 옮겨오면서 지금의 동구릉이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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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릉(穆陵)은 조선 선조(宣祖)와 첫 번째 왕비 의인왕후(懿仁王后) 박씨와 계비 인목왕후(仁穆王后) 김씨의 능으로

동원삼강릉(同原三岡陵)이다.

 

의인왕후 박씨가 1600년에 승하하자 경기도 포천 신평에 터를 잡고 산릉(山陵) 공역을 시작하였으나

터가 불길하다는 상소가 올라오자 터를 다시 정하여 건원릉(健元陵)의 동쪽에 산릉을 건립하고

능 이름은 유릉(裕陵)이라 하였다.

 

 

목릉 자리에는 처음 의인왕후의 능이 유릉이라는 이름으로 조성되었고

선조의 목릉은 현재의 경릉(헌종) 자리에 만들어졌으나 1630(인조 8)에 선조의 능을 현재의 자리로 옮겼으며

이후 인목왕후의 능이 자금의 자리에 조성되면서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의인왕후 박씨의 유릉(裕陵) 곁에 선조의 목릉이 들어서자 능의 이름을 합쳐 목릉(穆陵)이라 부르고

정자각(丁字閣)을 하나로 통합하였다.

 

태조 이성계의 건원릉(健元陵)

 

건원릉(健元陵)은 조선 태조 이성계의 능으로 동구릉의 원릉이며 동구릉의 가장 깊숙한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태조 이성계는 새 왕조를 개국하고 17년 뒤인 1408(태종 8)에 승하하여 그 해 99일에 이곳에 묻혔다.

 

건원릉은 기부(基部)12()의 둘레돌(護石)로 싸고 둘레돌 밖으로는 돌난간(石欄干)을 두르고 있으며,

그 밖으로는 석호(石虎) 넷과 석양(石羊) 넷을 엇바꾸어 밖을 향해 배치하고 있으며

능 앞면에는 혼유석(魂遊石)이 있고 그 양쪽에는 망주석(望柱石)이 하나씩 서 있다.

 

 

건원릉 봉분의 기부(基部)는 십이각(十二角)의 호석(護石)으로 쌓고,

각각 중심에 태극(太極)이 있는 영탁영저문(靈鐸靈杵文)을 좌우에 양각(陽刻)하였다.

 

각 면에는 와운문(渦雲文) 중에 수관인신(獸冠人身)12지신상(十二支神像)을 역시 양각하고,

면석(面石)우석(隅石) 아래쪽에는 영지(靈芝)를 새겼다.

 

대한제국 추존황제 문조(文祖)와 황후 신정익황후(神貞翼皇后) 조씨의 수릉(綏陵)

 

수릉(綏陵)은 대한제국 추존황제 문조(文祖)와 황후 신정익황후(神貞翼皇后) 조씨의 능으로,

문조는 순조의 맏아들이자 헌종의 아버지이며 신정왕후 조씨는 헌종의 어머니이다.

 

문조는 조선 후기의 예악(禮樂)을 정비하고 백성을 위한 정책을 펼쳤으나

22세로 세상을 떠나 시효를 효명세자라 하였으며,

아들 헌종이 왕위에 오르자 익종으로 추존되고 다시 1899년에 문조익황제로 추존되었다.

 

조선 문종(文宗)과 비 현덕왕후 권씨(顯德王后 權氏)의 현릉(顯陵)

 

현릉(顯陵)은 조선 문종(文宗)과 비 현덕왕후 권씨(顯德王后 權氏)의 능이며,

원래는 영릉(英陵) 우강(右岡)에 정하였으나,

이곳은 물이 나고 돌이 나와 현 위치인 건원릉(健元陵) 동강(東岡)을 택하게 되었다.

 

1457(세조 3)에 단종이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등되어 영월로 유배되는 가운데 현덕왕후도 서인으로 강등되었으며

소릉도 파헤쳐 져 관이 해변의 모래사장에 버려지는 등 능이 무참히 파괴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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