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수원시 장안구에 위치한 수원화성(水原華城)은 둘레 약 5.7km 높이 4~6m의 성곽으로, 정조가 사도세자의 묘를 수원 화산(華山)으로 옮기면서 화성을 축성하게 되었다고 한다.
수원화성에는 적을 감시하는 시설인 각루(角樓)를 비롯하여 개천이 범람하지 않도록 물길을 조정하는 구실을 한 북수문(北水門)과 화홍문, 그 밖에 적대(敵臺)ㆍ노대(弩臺)ㆍ공심돈(空心墩) 등 총 48개의 시설물들이 있다.
수원화성에는 동북각루ㆍ서북각루 등 모두 4곳의 각루( 角樓)가 있으며, 동북각루(東北角樓)는 화성 동북쪽에 세운 감시용 시설로 용두바위 위에 각루를 우뚝 새워 주변을 감시하고 화포를 쏠 수 있도록 하였다.
각루에는 보통 군사들의 휴식을 위해 각루 1층에 온돌방을 만들었는데 동북각루에는 임금을 위해 2층에 온돌방을 두고 창문을 설치하였으나 현재는 온돌방과 창문은 사라졌다.
동북각루(東北角樓)의 별칭이기도 한 방화수류정(訪花隨柳亭)은 앞면 3칸 옆면 3칸의 아자형(亞字形) 평면구조로, 지붕은 8각 지붕을 기본으로 처마는 겹처마이고 천정은 연등천정이며 지붕 상부에는 세 마디의 절병통을 세우고 용마루와 내림마루를 설치하였다.
방화수류정은 화홍문(華虹門) 동쪽의 높은 벼랑 위에 있는 누각이며, 화성 성곽 중 가장 경관이 뛰어난 누각이며 보물 제1709호로 지정되었다.
방화수류정의 평면은 “ㄱ”자형을 기본으로 북측 용연측과 동측은 凸형으로 돌출하여 튀어나오게 조영하여 사방을 볼 수 있도록 꾸몄다.
방화수류정은 다른 정자에서 보이지 않는 독특한 평면과 지붕 형태의 특이성 등을 토대로 18세기 뛰어난 건축기술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로서 역사적ㆍ예술적ㆍ학술적으로 가치가 크다고 한다.
방화수류정은 1794년(정조 18년)에 수원성곽을 축조할 때 세운 누각으로, 용연(龍淵) 남측에 불쑥 솟은 바위 언덕위의 구릉(丘陵) 정상에 자리하고 있다.
방화수류정(訪花隨柳亭)은 석재와 목재ㆍ전돌을 적절하게 사용한 전시용(戰時用) 건물이지만 정자의 기능을 고려하여 조영된 건물이라고 한다.
서북각루(西北角樓)는 화성 서북쪽 요충지에 세운 감시용 시설이며, 팔달산을 오르는 경사지에서 성벽이 휘어진 곳에 자리 잡아 서북쪽 일대가 한 눈에 들어오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아래층에는 군사들이 머무는 방에 온돌을 놓았고 위층은 마룻바닥으로 만들었으며, 지금은 사라졌지만 사면에 널빤지 문을 달고 구멍을 내어 적을 감시하였다고 한다.
화홍문(華虹門)은 수원화성을 가로질러 흐르는 수원천의 북쪽과 남쪽에 세운 2개의 수문(水門) 중 하나인 북수문(北水門) 위에 있는 문루(門樓)이다.
화홍문은 사다리꼴의 높은 주초석(柱礎石) 위에 두리기둥을 높이 세우고 밑에서 한길 되는 높이에 마루를 깔았으며, 아래층은 남측의 중앙간을 개방하고 좌우 협간은 벽돌로 막았으며 좌우 측면에 2층으로 오르는 사다리를 두었다.
북수문(北水門)은 전란에 대비하여 여러 가지 방어시설을 갖추는 동시에 시내를 관통하는 개천이 범람하지 않도록 물길을 조정하는 구실을 하였다고 한다.
북수문의 수문은 모두 7개의 석조아치로 만들어졌는데 가운데 한 칸이 약간 넓으며, 아치와 아치 사이는 네 개의 돌기둥을 세워 물이 잘 빠지도록 하였으며 아치 위로는 다리 돌을 놓아 사람들이 지나다닐 수 있도록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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