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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서울

조선의 여인천하 태릉(泰陵)과 강릉(康陵), 나무숲길 산책

by kangdante 2025. 1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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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노원구 공릉동에 위치한 태릉(泰陵)은 조선 중종(中宗)의 제2계비인 문정왕후 윤씨(文定王后 尹氏)의 능이며, 강릉(康陵)은 명종(明宗)과 명종비 인순왕후 심씨(仁順王后 沈氏)의 능이다.

 

태릉(泰陵)과 강릉(康陵)은 원래 한 울타리 안에 있었지만 1965년에 태릉선수촌이 중간에 건립되면서 별도로 떨어져 자리하고 있으며, 태릉과 강릉을 연결하는 총 1.4km의 숲길이 있다.

 

 

태릉은 봉분 1기만 있는 단릉(單陵)이며, 병풍석 12면과 난간석 12칸 밖으로는 혼유석(魂遊石) 1, 망주석(望柱石) 1, 양석(羊石)과 호석(虎石) 2쌍 및 3면의 곡장(曲墻)으로서 층계를 이루고 있다.

 

태릉은 구름무늬(雲彩)와 십이지신상(十二支神像)이 새겨진 병석(屛石)을 둘렀고, 중간 층계에는 문인석(文人石)과 마석(馬石) 1, 팔각형 장명등(長明燈)이 세워져 있으며, 아래층에는 무인석(武人石)과 마석(馬石) 1쌍이 세워져 있다.

 

 

 

능침(陵寢) 아래의 정자각(丁字閣)6.25전쟁 때 파손된 것을 1995년에 다시 세운 것이며, 이밖에 비각(碑閣)수직방(守直房), 그리고 입구에 홍살문(紅箭門) 등이 있다.

 

태릉과 강릉의 재실(齋室)은 홍살문 서남쪽에 있었으나 1970년에 쇠락하여 없어지고, 그 자리에는 태릉 푸른 동산 안의 수영장 시설이 들어섰다.

 

 

문정왕후는 원래 서삼릉(西三陵)에 있던 중종의 정릉(靖陵)을 선정릉(宣靖陵)으로 옮기고 자신도 후일 합장하려 하였으나, 여름철 홍수 때에 정릉 주변까지 침수되는 관계로 문정왕후는 중종과 함께 묻히고자 하였던 소원을 이루지 못하고 이곳에 따로 태릉을 만들게 되었다.

 

문정왕후는 중종인종명종의 3대에 걸쳐 왕비와 대비로 있으면서, 당의 측천무후와 청의 서태후와 비교될 정도의 수렴청정(垂簾聽政) 권력을 행사하면서 조선을 여인천하로 몰아넣은 인물이며 을사사화(乙巳士禍)로도 유명하다.

 

 

강릉 숲길은 분리되었던 태릉~강릉 간의 숲길 1.4를 정비하여 봄가을에 각각 2개월씩 4개월간 일반에게 개방하는 숲길이다.

 

태릉~강릉 간 숲길 구간의 개방기간은 10.1~11.30(매주 월요일 후관)까지이고 개방시간은 10.1~10.3109:00~17:00(입장마감 16:00)이고 11.1~11.3009:00~16:30(입장마감 15:30)이다.

 

 

강릉(康陵)은 명종(明宗)과 명종비 인순왕후 심씨(仁順王后 沈氏)의 능으로, 1567(명종 22)에 명종이 죽자 이곳을 능지로 정하였으며, 1575(선조 8)에 왕비 능도 왕릉과 나란히 앉혀 쌍릉을 이루게 하였다.

 

두 능침은 모두 운채(雲彩)12지신상이 새겨진 병석(屛石)을 두르고 있고, 만석(滿石) 중간에 문자로 십이지(12)를 새겨 넣었다. 두 능침 앞에는 각각 혼유석(魂遊石)1좌씩 놓았으며 장명등(長明燈)16세기 복고풍의 특색을 잘 나타내주고 있다.

 

 

 명종은 어린 나이에 임금이 되었으므로 어머니인 문정왕후가 수렴청정(垂簾聽政)하였으며, 이에 문정왕후의 동생인 윤원형(尹元衡)이 득세하여 1545(명종 즉위년)에 을사사화를 일으켰다.

 

명종비 인순왕후 심씨(仁順王后 沈氏)는 영의정 심연원(沈連源)의 손녀이고 청릉부원군(靑陵府院君) 심강(沈鋼)의 딸이며, 1545(명종 즉위년)에 왕비로 책봉되었으며 선조가 즉위하자 잠시 수렴청정(垂簾聽政)하였고 1575(선조 8)에 창경궁에서 4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조선왕릉 전시관은 조선왕릉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를 돕고 그 역사적 가치를 국민에게 알릴 목적으로 200912월에 개관하였으며, 왕릉의 역사와 문화예술을 한 눈에 둘러볼 수 있다.

 

전시관은 패널모형영상 등의 다양한 전시 기법을 동원하여 관람객이 이해하기가 쉽도록 전시하였으며, 200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된 조선왕조 의궤(儀軌)에 대한 내용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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