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양주시 유양동에 위치한 양주목 관아(楊州牧 官衙)는 조선시대 양주지역의 행정을 담당하던 중심 관청이 있던 곳으로, 오랜 발굴조사 과정을 거쳐 지난 2018년 4월에 개관식을 갖고 복원하였다.
현재 복원된 양주목 관아(楊州牧 官衙) 자리에는 1506년에 설치되어 417년 동안 양주목(楊州牧)을 다스리던 관청이 있었던 관아 터였다고 한다.



외삼문(外三門)은 동헌이 시작되는 관아 전면부에 설치한 문으로, 여지도서(輿地圖書)의 기록에 의하면 3칸의 규모로 북을 치고 나팔을 부는 ‘고취지소(鼓吹之所)’로 표기되어 있다.
경기읍지(京畿邑誌)에서는 6칸의 규모로 기록됨에 따라 초축 후 후대 증축된 것으로 추정된다. 중층구조이며 1층에 문이 설치되고 2층에는 큰 북을 달아 아침저녁으로 북을 쳐서 읍내의 시간을 알렸다고 하며 6칸의 규모로 복원하였다.



양주시에서는 지난 1997년 양주목사 집무처인 동헌(매학당)의 복원을 시작으로 동행각ㆍ서행각ㆍ내삼문ㆍ외삼문ㆍ사령청ㆍ중렴성문ㆍ외렴성문 등과 목사의 관사였던 내와ㆍ내아삼문 등을 복원 완료하였다.
복원된 관아 자리는 목사(牧使)의 정청(政廳)이었던 매학당(梅鶴堂)이 있었던 곳으로, 매학당은 목사가 정무를 보던 외동헌과 가족이 생활하던 내동헌으로 이루어져 있는 20여 칸 정도의 규모였다고 한다.



양주 관아지(官衙址)는 지난 2000년부터 2017년까지 5차례에 거쳐 발굴 조사한 결과 건물지ㆍ담장지ㆍ배수시설ㆍ출입시설 등의 유구(遺構), 평기와ㆍ막새기와ㆍ명문 기와 등의 기와류, 청자ㆍ분청사기ㆍ백자 등의 자기류, 상평통보 등 금속유물 등이 발굴되었다고 한다.
양주관아 규모가 어떠했는지는 여지도서(輿地圖書)ㆍ경기지(京畿誌)ㆍ경기읍지(京畿邑誌) 등을 통해 알 수 있으며, 이중 양주목을 규모를 가장 잘 알 수 있는 자료는 경기읍지로 약 31개의 관아시설에 그 규모는 326여 칸이었다고 한다.


조선시대에 목(牧)이 설치된 곳은 경기도의 양주(楊州)를 비롯하여 광주ㆍ여주ㆍ파주 등 네 곳과 충청도ㆍ경상도ㆍ전라도ㆍ황해도ㆍ강원도ㆍ평안도 등에 모두 20개 지역이었다고 한다.
양주목 관아 등은 일제 강점기에 각각 군수 관사와 학교로 사용되었으며 1922년에 의정부에 있는 양주군청으로 이전될 때까지 사용된 관아 터였으며, 1945년 해방 후 화재로 소실되었다.


동헌(東軒)은 지방수령의 정청(政廳)으로 지방의 일반 행정업무와 재판 등이 행해지며, 지방관의 관사인 내아와 구분하여 보통 동쪽에 위치하여 동헌으로 불리게 되었다.
매학당(梅鶴堂)이 있기 전 동헌 역할을 했던 건물은 과학당(跨鶴堂)으로 기존 매학당 자리 뒤편으로 추정되며, 매학당의 명칭이 처음 기록에 등장하는 것은 경기지(京畿誌)에서 부터이나 여지도서(輿地圖書)의 내용을 볼 때 이전 시기에 과학당을 대신하여 새로운 동헌이 지어졌음을 알 수 있다.


2001년 양주 관아지 2차 발굴 때 매학당이 지어진 곳 앞쪽으로 매학당의 정확한 위치가 확인되었으며, 매학당은 초축 시 18칸으로 지어졌다가 후대에 증축하여 27칸 규모로 된 것을 확인하였다고 한다.
복원된 동헌(東軒)은 한식기와를 얹은 팔작지붕에 정면 7칸 측면 3칸의 목조건물이며, 화강암 기단 위에 주춧돌을 놓고 방형 기둥을 세웠으며 두공은 간결한 모양의 익공을 두 겹으로 얹은 무출목 이익공식 건물이다.











내아영역(內衙領域)은 지방수령이었던 양주목사의 가족들이 기거하였던 내아와 행랑채ㆍ내아삼문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관아건축 구조상 동헌의 서편에 위치하여 내동헌 또는 서헌이라고도 불린다.
튼 ‘ㅁ’자 모양의 내아에서 양주목사와 그 가족들이 거처하였고 내아와 동헌 사이의 협문인 중렴성문을 통해 내아와 동헌을 다녔을 것으로 추정된다.


내아 아래쪽에는 행랑채가 있어 주로 심부름 하는 사람들이 기거하거나 창고로 이용되었으며, 또한 외부로의 출입을 위해 내아삼문을 두었다.
3차 발굴조사 결과 그 모습을 드러내면서 내아에 대한 복원계획이 본격적으로 수립되었으며, 현재는 내아와 내아삼문은 복원되었다.








양주 관아 뒤편에 자리한 어사대 비(御射臺 碑)는 정조(正祖)가 양주 관아에 행차하여 활을 쏜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1792년(정조 16년)에 세운 사적비이다.
비(碑)는 형태만 겨우 갖춘 거북받침 위로 비신을 세운 비석으로 너비 55cm 두께 24cm 높이 136cm 등 총 186cm 높이의 간결한 구조이며, 현재 맞배지붕을 한 비각 안에 보존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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