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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서울

조선시대 무기 제조 관청, 군기시(軍器寺) 유적 전시실

by kangdante 2026. 3.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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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중구 세종대로에 위치한 군기시유적전시실은 2009년 서울시청 신청사 건립 과정에서 발굴된 유적을 이전하지 않고, 서울시청 지하 1층 시민청 현장에 조선시대 무기 제조를 담당하던 관청인 군기시(軍器寺)의 터와 유물을 보존하고 있는 공간이다.

 

발굴 유구로는 조선시대부터 근대에 이르는 건물지 유구 4기와 보도 시설 등을 발굴 당시 모습 그대로 볼 수 있으며, 주요 유물로는 보물로 지정된 불랑기자포를 포함하여 승자총통대장군포 등 조선시대 화포와 무기류백자 등 총 143점의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분청사기소호, 분청사기상감와선문접시, 분청사기상감운문전접시, 분청사기인화문전접시

 

청자화분받침, 청자상감화분

 

청자반

 

출토된 생활 유물로는 주로 조선 전기(15~16세기)의 자기 및 그릇류, 제작 공정이나 일상에서 쓰인 도구인 목제(나무 망치신발) 및 금속제 생활도구(수저와 조선시대 통용되던 동전 등), 그리고 건물의 지붕을 덮었던 기와 조각들이 출토된 건축 및 기타 유물 등이 있다.

 

자기 및 그릇류로는 대접접시 등 실생활에서 흔히 쓰이던 그릇들인 조선백자와 분청사기, 그리고 일상용품 외에도 화로나 화분 같은 장식 및 특수 용도의 청자들도 함께 출토되어 당시 관청 내부의 문화를 짐작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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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자화분

 

자기류는 조선청자조선백자분청사기중국백자 등이며, 조선청자는 고려청자의 양식이 남아있는 화로와 화분 등이 있으며 조선백자는 발접시병 등 일상생활에 사용되던 그릇이 주를 이룬다.

 

청화백자에서는 묘지석과 장기알 등이 발굴되었고, 분청사가기는 일상에서 쓰이던 그릇이 대부분이며, 건물기초에 묻어두는 진단구가 일부 포함되어 있다.

 

백자화분

 

백자발

 

청화백자, 백자접시

 

백자 장식구

 

백자음각연화문편병, 백자병, 백자잔대

 

명문이 있는 분청사기

 

목제품, 목제신발, 목제도구, 월소(머리빗 추정)

 

화약이 담긴 청동그릇

 

 

승자총통(勝字銃筒)은 조선 중기 보병의 화력을 획기적으로 높인 개인 휴대용 화기이며, 1575~1578년경 전라좌수사와 경상병사를 지낸 김지(金墀)가 기존의 총통들을 개량하여 만든 것이라고 한다.

 

승자총통의 전체 길이 약 56.8cm 무게 4.5kg 내외로 마디가 6개 있는 원통형 구조이며, 총구로 화약과 탄환을 넣은 뒤 손으로 심지(약선)에 직접 불을 붙여 발사하는 지화식(持火式) 방식을 사용하며 한 번에 철환(쇠구슬) 15개 또는 화살(피령목전) 1개를 발사할 수 있다.

 

 

불랑기자포(佛郞機子砲)는 조선시대 유일한 후장식(포 뒤쪽에서 장전하는 방식) 화포이며, 명문이 새겨져 있어 제작 연도(1563)와 제작자를 명확히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써 보물 제861-2호로 지정되어 있다.

 

불랑기자포는 조선시대 화력 무기 체계의 혁신을 보여주는 유물이며, 1563(가정 42)에 제작되었으며 유물 몸체에 새겨진 명문을 통해 제작 시기와 제작자(함길도 김석년 등)를 명확히 알 수 있다.

 

대장군전(大將軍箭), 불랑기포(佛郞機砲)

 

대장군전 (大將軍箭)은 조선시대 가장 큰 화포인 천자총통(天字銃筒)에 장전하여 쏘았던 거대한 화살이며, 길이가 약 2.5m~3m에 달하며 무게는 30kg이 넘는 거대 무기라고 한다.

 

재질은 단단한 가시나무나 소나무로 몸통을 만들고, 앞부분에는 날카로운 철촉을 달았으며 뒷부분에는 방향을 잡는 가죽 날개를 붙였다.

 

 

군기시유적지에서는 서로 다른 시대의 건물지가 겹쳐진 문화층을 직접 확인할 수 있으며, 조선 시대 건물지는 무기를 제조하던 작업장이나 이를 보존하던 창고로 추정된다고 하며, 일반 민가에 비해 부엌 공간이 좁고 골목길이 명확하지 않은 점이 특징이라고 한다.

 

근대 건물지는 조선 시대 유구 위로 일제강점기 등 근대에 축조된 건물의 기초 석축 등이 남아 있어 시대에 따른 도시 지형의 변화를 보여주고 있으며, 전시실 내부의 유리 바닥 아래로 발굴 당시의 실제 유구를 관람하며 당시의 생활상을 더 생생하게 느껴볼 수 있다.

 

 

군기시는 기본적으로 무기를 제조하던 관청이었으나 발굴된 유물의 층위(조선 전기~근대)를 통해 이 지역이 시대별로 변해왔으며, 그곳에서 일하던 장인과 인근 주민들이 어떤 도구를 사용하며 생활했는지 종합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고 한다.

 

발굴 당시 생활 유물보다는 화살촉 더미철환화포 등 무기 관련 유물이 집중적으로 출토된 것으로 보아, 이곳이 군기시의 핵심적인 무기 제작 및 관리 시설이었음을 알 수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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