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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공연

서울역사박물관 ‘서울의 전차’ 기획전

by kangdante 2020. 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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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신문로에 위치한 서울역사박물관에서는 한국전력공사와 공동으로 지난 2019. 12. 20()부터 오는 20203, 29()까지

120년 전의 전차 개통을 기념하여 서울의 전차기획전을 전시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는 특히, 한국전력공사 전기박물관에 소장하고 있는 보스트위크 사진첩들을 전시하여

우리에게 잊혀진 초기 전차의 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는 전시가 되고 있다.

 

 

우리나라 전차의 역사는 1887년에 경복궁 건청궁(乾淸宮)에 전기가 들어 왔고,

이어 1899년에 전차가 개통되어 한성은 바야흐로 근대도시로서의 기반을 갖추게 되었다고 한다.

 

1968년에 마지막 전차가 운행될 때 까지 전차는 한성과 경성과 서울의 중요한 교통시설로 자리매김하였으며,

전차는 단순한 교통수단뿐만 아니라 오백년의 역사를 지닌 한성부의 도심을 둘러싸고 있던 한양도성을 해체하는 동인(動因)이 되기도 하였다.

 

 

전차는 공중에 설치된 전선으로부터 집전창치(集電裝置)를 통해 전력을 공급받아 운행하는 차이며,

초기의 전차는 나무로 만든 사륜차로 지붕에 트롤리풀(Trolley Pole)이 설치되어 운전사가 직접 제어하였다고 한다.

 

이후 전차는 점점 대형화되었고 제어장치도 직접식에서 간접식으로,

제동도 수동 제동에서 공기제동으로 변화하였다고 한다.

 

 

전기의 도입과 도로의 정비는 전차가 부설될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이었으나,

기존의 건청궁의 발전소는 궁궐의 사용에 제한된 설비에 불과했으므로 새로운 발전시설과 전기선이 필요하였다.

 

처음에는 고종의 내탕금 10만원과 경인철도회사로부터 차관한 10만원으로 회사를 세우려 하였으나 쉽지 않아,

결국 황실은 민간 회사의 틀을 빌려 한성전기회사를 설립하였다.

한성전기회사는 명목상으로는 민간회사였지만 실질적으로는 황실 회사였으며,

한성판윤 이채연(李采淵)이 사장으로 취임하여 그의 이름으로 각종 계약을 체결하였다.

 

 

1898년 경희궁 흥화문(興化門) 앞에서 기공식이 거행된 이래 선로부설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으며,

이후 75Kw 550v의 직류발전기 1대를 도입하여 동대문발전소를 세웠다.

 

고종의 지원에 힘입어 전차부설사업은 성공을 거두었으나,

당초의 기대와는 달리 전기회사는 경영상 문제가 초래되면서 미국 법인인 한미전기회사로 전환되고 말았다.

 

 

18995월에 두 번의 연기 끝에 전차 개통식이 드디어 열렸으며,

전차를 구경하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고 한다.

 

동대문발전소에서부터 전차 8대가 질주하기 시작하였고 한성에서 전차가 달린 역사적 순간은

일본의 교토와 나고야에 이어 아시아 세 번째 였으며, ‘전기철도또는 전기거(電氣車)’의 역사적 등장을 알렸다.

 

 

전차 개통 후 시공간에 대한 사람들의 감각은 확연히 달라졌으며,

사람들은 시간에 맞춰 운행하는 전차를 이용하면서 시간의 규칙성에 대해 학습하였다.

 

먼 곳으로의 이동이 편리해지고 도성 밖으로 쉽게 이동할 수 있었고 시간의 절약과 이동의 자유로움으로

사람들은 늦은 밤까지 시간을 활용하였다.

또한, 시공간 감각의 변화는 사람들에게 이전의 시대와는 확연히 다른 시대로 진입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한성이 근대화의 물결 속에 휩쓸릴 때에도 성벽은 황도의 경계를 구분지으면서 여전히 수도의 위엄을 드러내었지만,

전차가 성문을 통과 하면서 문을 여닫지 못하게 되자 도성에 대한 심리적 경계는 허물어졌다.

 

숭례문 일대가 혼잡해지자 도성의 훼철이 논의되기 시작하였고 결국 일본 황태자의 방문을 핑계로 일제는 숭례문 북쪽 성벽을 헐어 버렸다.

이후 전차는 왕조의 상징인 궁궐도 변형시켰으며,

1923년 조선부업품공진회를 위해 놓인 괘도로 경복궁의 서십자각(西十字閣)이 없어지고 서문인 영추문(迎秋門)이 전차의 진동으로 인해 붕괴되었다.

 

 

1928년에는 경성에 전차 이외의 대중교통수단으로 버스가 등장하였으며,

버스의 등장은 전차의 독점체제에 변화를 가져왔으며, 빠른 속도와 쉬운 노선 변경 등의 장점을 갖춘 버스는 점차 전차를 위협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전차와 버스의 경합은 불필요한 경쟁을 막자는 총독부의 정책에 따라 중지되었으며,

간선에는 전차가 지선에는 버스가 다니는 전차 중심의 교통체계가 완성되었다.

 

 

해방이후 서울의 인구는 급속도로 증가하여 만원 전차의 문제는 날로 심각해졌으며,

그 기능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게 되자 증편보다는 다른 교통수단의 대체를 선택하게 되었다.

 

버스를 중심으로 한 교통시스템으로 변화되자 버스 승객은 날로 늘고 전차 승객은 감소로 이어지자,

1899년에 개통된 이래 대표적인 대중교통수단으로서 시민의 발 노릇을 하였던 전차는 70년 만에 사라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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