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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경기도

강화 정족산(鼎足山) 사고지(史庫址)와 삼랑성(三郎城)

by kangdante 2020. 5.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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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시 강화군 길상면 온수리에 위치한 강화 정족산(鼎足山) 사고지(史庫址)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던 사고인 장사각(藏史閣)과 족보를 보관하던 선원보각(璿源譜閣)이 있던 곳이다.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였던 사고(史庫)는 내사고(內史庫)인 춘추관과 외사고(外史庫)인 충주성주전주 등 3사고가 있었으나

임진왜란 때 전주사고만 화를 면하고 모두 소실되었으며,

그 후 화를 면한 전주사고본이 한양에서 가까운 강화로 옮겨져 1606(선조 39)에 복인(復印)작업을 완료하고,

전주사고본인 원본을 마니산 사고로 옮기고 나머지 4부는 춘추관태백산묘향산오대산 사고에 이안되었다.

 

 

마니산 사고는 병자호란과 사각(史閣) 실화사건으로 삼랑성 내 정족산(鼎足山) 사고가 건립되어 이안 봉안되어 왔으나,

일제 강점기 때 조선총독부에 이관되었다가 1930년 경성제국대학으로 옮겨졌으며 해방 후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보관되어 오고 있다.

 

정족산 사고는 1931년 전후에 파손되어 빈터에 주춧돌만 남아 있던 것을 1998년 강화문화권 사업의 일환으로 두 건물을 복원 한 후,

옛 현판인 장사각(藏史閣)과 선원보각(璿源譜閣)을 다시 달았다.

 

 

삼랑성(三郎城)은 일명 정족산성(鼎足山城)이라고도 하며, 성을 쌓은 연대는 확실치 않으나

고려사(高麗史)에 의하면 단군이 세 아들에게 성을 쌓게 하고 이름을 삼랑성으로 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처음에는 흙으로 쌓은 토성이었는데 삼국시대에 이르러 그 위에 막돌을 맞추어가며 쌓았고

성체 안에는 막돌을 채운 튼튼한 석성으로 축조되었으며, 삼랑성은 고려조선시대를 거치면서 성은 더욱 보강되었다.

 

 

삼랑성은 강화산성과 더불어 한양의 외곽을 방어하는 매우 중요한 장소였으며,

성안에는 삼국시대에 창건한 전등사를 비롯하여 고려시대에는 풍수설에 따라 왕업을 연장하기 위하여 성안에 가궐(假闕)이 있었으며,

조선시대에는 사고(史庫)와 선원보각(璿源譜閣)이 있었다.

 

삼랑성은 유구한 역사를 가진 곳으로 예로부터 신성한 곳이라는 인식이 있었으며,

1739(영조 15)에 중수하면서 남문에 문루를 건립하고 종해루(宗海樓)라 명명하였으며 1976년에는 종해루를 원형대로 복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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