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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경기도

7일 왕비 단경왕후(端敬王后)의 능, 온릉(溫陵)

by kangdante 2020. 9.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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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일영리에 자리한 온릉(溫陵)

비운의 7일 왕비였던 중종(中宗)의 첫 번째 비()인 단경왕후(端敬王后) 신씨(愼氏)의 능()이다.

 

인왕산의 치마바위 전설의 주인공인 단경왕후는

진성대군의 부인으로 1506년 중종반정으로 중종으로 등위하자 왕비로 책봉되었으나,

7일 만에 폐출되었다가 1739(영조15)에 복위되었다.

 

 

온릉은 능 뒤에 곡장(曲墻)을 두르고 능 안에 석양(石羊)석호(石虎)로 호위하였으며,

병석(庰石)과 난간이 없는 원분(圓墳) 앞에 혼유석(魂遊石)을 놓고 양쪽 끝에 망주(望柱)를 세우고,

중앙에 사각옥형의 장명등을 세우고 양쪽에 문석(文石)과 석마(石馬)를 배치하였다.

 

 

단경왕후(端敬王后)는 익창부원군 신수근(愼守勤)의 딸로 1499년에 진성대군과 결혼하여 부부인(府夫人)이 되었고

1506년 중정반정으로 남편이 왕위에 오르자 왕비가 되었다.

 

그러나 아버지 신수근이 중종반정을 반대하였다는 이유로 왕비가 된지 7일 만에 폐위되었으며,

1515년 복위론(復位論)이 있었으나 무산되었다.

 

 

단경왕후는 그 후 1557년에 71세로 세상을 떠났으며 182년이 지난 1739(영조 15)에 왕비로 복위되어

시호(諡號)를 단경왕후(端敬王后), 능의 이름을 온릉(溫陵)이라 하고 종묘에 신주를 모셨다.

 

온릉의 연혁을 보면, 1557(명종 12)에 친정 거창 신씨 선산에 폐비 신씨의 묘를 조성하였고,

1739(영조 15)에 단경왕후로 복위하여 능의 형식에 맞게 재조성하였다.

 

 

비각(碑閣)은 능 주인의 행적을 기록한 신도비나 표석을 세워둔 곳으로,

온릉 표석은 단경왕후가 복위된 후 1807(순종 7)에 세웠으며

온릉의 비문(碑文)은 조선국 단경왕후 온릉(朝鮮國 端敬王后 溫陵)’으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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