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성보4 강화해안 외곽초소 겸 포대, 용두돈대(龍頭墩臺) 인천시 강화군 불은면 덕성리에 위치한 용두돈대(龍頭墩臺)는 용머리처럼 돌출한 자연 암반 위에 설치된 천연적인 외곽초소 겸 포대였다고 한다. 돈대 입구에는 해안을 수비하던 광성포대가 위치하고 있으며, 중앙에는 강화전적지정화기념비(江華戰蹟地淨化記念碑)와 함께 기념비 양 옆에는 당시에 사용하였다는 홍이포(紅夷砲) 2문이 전시되어 있다. 용두돈대는 광성보(廣城堡)에서 해안숲길을 따라가다 보면 수심이 가장 빠르고 폭이 좁은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1679년에 세워져 병인양요와 신미양요 때 치열한 포격전이 전개되었던 곳이라 한다. 용두돈대는 손돌목 돈대에 속해 있으며, 1871년(고종 8년)에 광성포대가 설치되면서 정비되었으며, 이후 1977년에 강화전적지 보수사업으로 성벽을 복원하면서 용두돈대라 부르게 되었다. 2020. 5. 8. 신미양요의 격전지, 강화 손돌목돈대 인천시 강화군 불은면 덕성리에 위치한 손돌목돈대는 강화해협을 지키는 해안가의 중요한 방어시설 중 하나로, 현재 광성보(廣城堡)에 속해있는 3개의 돈대 중 하나이다. 손돌목돈대는 1679년(숙종 5년)에 축조된 돈대로, 원래 덕진돈대와 함께 덕진진에 소속되어 있었으나 현재는 광성보 내에 위치해 있다. 손돌목돈대는 구릉 정상부에 위치해 있으며, 다른 돈대와는 달리 둥그렇게 쌓인 돈대이며 돈대 중앙에 3칸의 무기고가 있었고 포좌 3개가 있었다고 한다. 손돌목돈대는 성곽 길이 108m 넓이 778㎡ 규모이며, 1871년(고종 8년) 신미양요 때에는 미국 해군과 치열한 백병전이 벌어졌던 현장이기도 하다. 손돌목돈대는 특히, 신미양요 전투 때 조선군 사령관인 어재연 장군이 직접 지휘하며 격렬하게 반격을 가하던 요새.. 2020. 5. 7. 강화 광성보(廣城堡)와 광성돈대(廣城墩臺) 인천시 강화군 불은면 덕성리에 위치한 광성보(廣城堡)는 돌과 흙을 섞어 해협을 따라 길게 쌓은 성으로, 강화해협을 지키는 해안가의 중요한 요새였다고 한다. 강화도에는 바다를 통해 들어오는 적을 막기 위한 군사시설로 5진(鎭)ㆍ7보(堡)ㆍ54돈대(墩臺)로 요새화 하였으며, 이들 시설 중 진(鎭)의 규모가 보(堡)보다는 크고, 진과 보 아래에 돈대를 두어 관리하게 하였다고 한다. 안해루(按海樓)는 광성보의 성문이며, 돈대(墩臺)는 외적의 침입이나 척후활동을 사전에 관찰하고 대비할 목적으로 접경지역 또는 해안지역에 흙이나 돌로 쌓은 소규모의 방어시설을 말한다. 광성돈대(廣城墩臺)는 광성보에 소속된 3개 돈대 중 하나로, 1679년(숙종 5년)에 함경도ㆍ황해도ㆍ강원도의 승군 8,000여명과 어영군 4,300여명.. 2020. 5. 6. 광성보(廣城堡)의 광성돈대(廣城墩臺)와 안해루(按海樓) 인천시 강화군 불은면 덕성리에 위치한 광성보(廣城堡)는 덕진진ㆍ초지진ㆍ용해진ㆍ문수산성 등과 더불어 강화해협을 지키는 중요한 요새로, 돌과 흙을 섞어 해협을 따라 길게 쌓은 성이다 광성돈대(廣城墩臺)는 광성보에 소속된 3개 돈대 중 하나로, 1679년(숙종 5년)에 함경도ㆍ황해도ㆍ강원도의 승군 8,000여명과 어영군 4,300여명이 40일 만에 완공하였다고 한다. 안해루(按海樓)는 광성돈대의 성문이며, 돈대 내에는 신미양요 때 파괴되었으나 1977년에 당시에 사용하였던 포좌 4개소와 소포 3문을 돈대 안에 복원하여 전시하고 있다. 광성돈대의 성문인 안해루(按海樓) 광성보는 고려가 몽골의 침략에 대항하기 위하여 강화로 천도한 후에 쌓은 성으로, 1658년에 강화유수 서원이(徐元履)가 처음으로 광성보를 설치하.. 2018. 8. 23.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