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 강화군 불은면 덕성리에 위치한 광성보(廣城堡)는 돌과 흙을 섞어 해협을 따라 길게 쌓은 성으로,
강화해협을 지키는 해안가의 중요한 요새였다고 한다.
강화도에는 바다를 통해 들어오는 적을 막기 위한 군사시설로 5진(鎭)ㆍ7보(堡)ㆍ54돈대(墩臺)로 요새화 하였으며,
이들 시설 중 진(鎭)의 규모가 보(堡)보다는 크고, 진과 보 아래에 돈대를 두어 관리하게 하였다고 한다.
안해루(按海樓)는 광성보의 성문이며,
돈대(墩臺)는 외적의 침입이나 척후활동을 사전에 관찰하고 대비할 목적으로 접경지역 또는 해안지역에 흙이나 돌로 쌓은 소규모의 방어시설을 말한다.
광성돈대(廣城墩臺)는 광성보에 소속된 3개 돈대 중 하나로,
1679년(숙종 5년)에 함경도ㆍ황해도ㆍ강원도의 승군 8,000여명과 어영군 4,300여명이 40일 만에 완공하였다고 한다.
광성보는 선두보ㆍ장곶보ㆍ정포보ㆍ인화보ㆍ칠곶보ㆍ승천보 등 강화 7보(堡) 중의 하나이며,
광성보(廣城堡)에는 현재 광성돈대ㆍ손돌목돈대ㆍ용두돈대 등 3개의 돈대(墩臺)가 있다.
광성보는 고려가 몽골의 침략에 대항하기 위하여 강화로 천도한 후에 쌓은 성으로,
1658년에 강화유수 서원이(徐元履)가 처음으로 광성보를 설치하였으며,
숙종 때에는 용두돈대ㆍ오두돈대ㆍ화도돈대ㆍ광성돈대 등 소속 돈대가 만들어 졌으며 그 후 1679년에 완전한 석성(石城)으로 축조하였다고 한다.
광성돈대 내에는 신미양요 때 파괴되었으나
1977년에 당시에 사용하였던 포좌 4개소와 소포 3문을 돈대 안에 복원하여 전시하고 있다.
대포(大砲)는 홍이포(紅夷砲)라고도 하며 사정거리 700m로
포알은 화약이 폭발하는 힘으로 날아가나 포알 자체는 폭발하지 않아 위력은 약하다고 하며, 병자호란 때도 사용한 것이라 한다.
소포(小砲)는 사정거리 300m로 포알은 대포와 같으나 대포는 조준이 안 되지만 소포는 조준이 된다고 하며,
가장 작은 포는 불랑기라고도 하며 프랑스군이 사용하던 포라고 한다.
광성보는 1871년 신미양요(辛未洋擾)때 가장 치열한 격전지였다고 하며,
이 전투에서 조선군은 용감히 항전하였으나 열세한 무기로 몇 명의 중상자를 제외하고는 전원이 순국하였다고 한다.
현재 광성보 내에는 어재연 등 장수들의 용맹을 기린 쌍충비각과 무명 병사들의 무훈을 기린 신미양요 무명용사비,
그리고 신미양요 때 광성보 일대에서 미 해군과 격전하다가 전사한 용사들의 묘인 신미순의총(辛未殉義塚)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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