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합장릉3

대한제국 순종황제와 두 황후(皇后)의 합장릉, 유릉(裕陵) 경기도 남양주시 금곡동에 자리한 유릉(裕陵)은 대한제국의 순종황제(純宗皇帝)와 그의 비(妃) 순명황후 민씨(純明皇后 閔氏), 그리고 계비(繼妃) 순정황후 윤씨(純貞皇后 尹氏)의 합장릉이다. 유릉은 황제와 두 황후를 함께 합장한 조선왕릉 중 유일한 동봉삼실 합장릉이며, 중앙에 순종 우측에 순정황후 좌측에 순명황후의 재궁을 두어 기존의 원칙을 따르지 않았으며, 이는 중국 황제 능 제도를 따른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유릉(裕陵)은 능침ㆍ침전ㆍ홍살문 등이 직선형으로 배치된 홍릉과 달리 능침 공간과 제향 공간의 축이 각기 다르게 배치되었으며, 홍릉에 비해 능역의 규모가 다소 좁지만 석물은 홍릉에 비해 사실적이다. 유릉은 홍릉과 합칭(合稱)하여 홍유릉(洪裕陵)이라 불리며, 인근에는 영원(英園)ㆍ회인원(懷仁園)을 .. 2024. 2. 15.
고종황제(高宗皇帝)와 명성황후(明成皇后)의 합장릉, 홍릉(洪陵) 경기도 남양주시 금곡동에 자리한 홍릉(洪陵)은 고종황제(高宗皇帝)와 그의 비(妃) 명성황후(明成皇后)의 합장릉(合葬陵)이며, 옆에 있는 유릉(裕陵)과 합칭(合稱)하여 홍유릉(洪裕陵)이라 불리며 사적 제207호로 지정되었다. 홍릉은 조선이 대한제국으로 선포되고 왕이 황제가 됨으로써 능역 조성도 명(明)나라 태조의 효릉(孝陵)을 본받아 구조물을 대폭 확장하였으며, 종래의 정자각 대신 '一'자형의 정면 5칸 측면 4칸의 침전(寢殿)을 세웠다. 홍릉에는 능침의 호석(護石)인 양석(羊石)ㆍ호석(虎石) 대신 능침 앞에서부터 홍살문까지 기린ㆍ코끼리ㆍ해태ㆍ사자ㆍ낙타ㆍ말의 순으로 석수를 세웠으며, 또 문인석의 금관조복(金冠朝服)과 무인석의 성장(盛裝)이 강조되었다. 고종은 1919년에 홍릉(洪陵)에 초장 봉릉(初葬 封陵.. 2024. 2. 14.
세종대왕과 소헌왕후의 영릉(英陵)과 재실(齋室) 경기도 여주시 능서면 왕대리에 자리하고 있는 영릉(英陵)은 세종대왕(世宗大王)과 소헌왕후(昭憲王后) 심씨(沈氏)의 능으로, 조선왕릉 최초의 합장릉(合葬陵)이며 병풍석(屛風石)을 생략하고 난간석(欄干石)만 둘렀으며 혼유석(魂遊石) 2개를 배치하였다. 영릉의 지세는 층층이 해와 달의 모습을 띠면서 봉황이 날개를 펴고 내려오는 형국으로 조선 왕릉 중에서 최고의 명당자리라고 하며, 원래는 헌릉(獻陵)에 있었던 것을 1469년(예종 1년)에 이곳으로 이장(移葬)하였다고 한다. 세종(世宗)은 태종의 셋째 아들로 태어나 1418년에 왕위에 올라 32년간 재위하면서, 훈민정음 창제ㆍ측우기 등 과학기구 발명 등 정치ㆍ경제ㆍ문화ㆍ과학ㆍ군사 분야에서 훌륭한 업적을 남겼다. 소헌왕후(昭憲王后)는 세종이 왕위에 오르면서 공비(.. 2020. 12.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