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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서울

조선궁궐 경복궁(景福宮)으로 겨울나들이

by kangdante 2022. 2.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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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세종로에 자리한 경복궁(景福宮)은 조선시대 제일의 법궁(法宮)으로,

북으로 북악산을 기대어 자리 잡고 정문인 광화문 앞으로는 넓은 육조거리가 펼쳐진 한양의 중심이며

궁궐 중 가장 중심이 되는 곳이었다.

 

경복궁 이름은 시경(詩經)왕조의 큰 복을 빈다.’에서

큰 복을 빈다는 뜻의 경복(景福)이라는 두 글자를 따서 정도전이 지은 것이라고 한다.

 

 

광화문(光化門)은 경복궁의 남쪽에 있는 정문으로,

1395(태조 4)에 건립하였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되고 6.25전쟁 때 목조부분이 불에 타 없어졌으나

1865(고종 2)에 대원군이 재건하였다.

 

1968년에 석축은 그대로 두고 현판을 새로 만들고

상부는 철근 콘크리트를 사용하여 경복궁의 본래축이 아닌 총독부건물의 축에 맞춰 재건축 하였다가

20108월에 지금의 광화문으로 새롭게 복원하였다.

 

 

흥례문(興禮門)은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과 근정전의 정문인 근정문 사이에 있는 중문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중층 목조 건물이다.

 

흥례문의 원래 이름은 '()를 널리 편다.’는 의미로 홍례문(弘禮門)이었으나

1867(고종 4)에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지금의 흥례문(興禮門)으로 변경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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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정문(勤政門)은 정전(正殿)으로 향하는 주 출입문의 구실을 하는 근정전의 정문이며

좌우에 복도건물인 행각이 둘러싸여 있으며, 보물 제812호로 지정되어 있다.

 

근정문은 앞면 3칸 옆면 2칸의 2층 건물로 1395(태조 4)에 경복궁이 창건되면서 함께 세워졌으나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었다가 1867(고종 4년) 경복궁 중건 때 다시 지어졌다.

 

 

근정전(勤政殿)은 조선시대 정궁(正宮)인 경복궁(景福宮)의 가장 중심이 되는 정전(正殿)으로,

조례가례즉위식사신접견 등 국가의 중요행사가 치러지는 건물이며 국보 제223호이다.

 

근정전의 외부 모습은 팔작(八作)지붕의 2층 건물로 보이지만 내부는 층 구분이 없는 통층(通層)으로 된 구조이며,

현재 건물은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1867(고종 4)에 다시 지은 것이다.

 

 

내부의 보개(寶蓋) 천장에는 발가락이 7개인 황색 칠조룡이 조각되어 있으며,

이는 자주적이며 강건한 왕권을 드러내려는 의지를 드러내는 것이라 한다.

 

건물의 기단인 월대의 귀퉁이나 계단 주위 난간기둥에는 12지신상을 비롯하여 동물들을 조각해 놓았으며,

회랑으로 둘러싸고 평평한 돌을 깐 근정전 앞마당이 바로 조정(朝庭)이다.

 

 

경회루(慶會樓)는 조선시대 왕이 연못에서 뱃놀이를 즐기는 왕실의 정원이며,

나라에 경사가 있을 때 신하들과 대규모의 연회(宴會)를 주재하거나 외국 사신을 접대하였던 곳이라고 한다.

 

경회루(慶會樓)는 원래 작은 규모였으나 1412년 연못을 넓히면서 크게 다시 지었다고 하며,

주역(周易)의 원리에 기초하여 지었다는 옛 기록이 있다고 한다.

 

 

경회루는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불에 타 돌기둥만 남아있었으나 1867년 고종 때 재건하었으며,

단일 평면으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규모가 큰 누각이며

앞면 7칸 옆면 5칸의 팔작지붕 2층 건물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고 한다.

 

 

집옥재(集玉齋)는 고종(高宗)이 개인 서재를 겸하여 외국사신 접견소 등으로 사용하던 건물이며,

전체적으로 경복궁의 다른 건물에 비해 이국적인 지역을 형성하며 중국적인 면을 많이 지녔다는 것이 특징이라고 한다.

 

이 건물은 앞면 5칸 옆면 3칸의 단층 맞배집이며, 건물 전면의 툇간을 전부 개방하고

양측면은 박공마루까지 전벽(塼壁)을 쌓았고 8쌍의 쌍공(雙孔)을 만들었음이 특이하다고 한다.

 

팔우정(八隅亭)은 팔각형의 2층 정자이며, 집옥재는 양 옆벽을 벽돌로 쌓고 내부를 중2층으로 만들었으며

복도를 통해 하나의 내부로 연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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