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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경기도

원종(元宗)과 인헌왕후(仁獻王后)의 쌍릉(雙陵), 장릉(章陵)

by kangdante 2022. 7.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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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김포시 풍무동에 위치한 장릉(章陵)

사후 왕으로 추존된 원종(元宗)과 그의 비()인 인헌왕후(仁獻王后)를 모신 쌍릉(雙陵)이며 사적 제202호이다.

 

조선 왕릉에는 장릉이 세 곳이 있으며, 김포의 장릉(章陵)과 더불어 강원도 영월에 소재한 단종(端宗)의 장릉(莊陵),

그리고 인조(仁祖)와 왕비인 인열왕후(仁烈王后)의 파주 장릉(長陵) 등이 있다.

 

 

원종(元宗)은 선조(宣祖)의 다섯째 아들이며 인조(仁祖)의 아버지인 정원군(定遠君)으로,

1619년 사망할 때는 군()의 신분이었으므로 남양주시 금곡동의 처갓집 선산에 초라하게 묻혀 있었다.

 

이후 아들 능양군(인조)이 왕이 되자 원종으로 추존되었으며,

묘도 원()으로 추승 되어 흥경원(興慶園)이라 하였고

이후 원종의 무덤은 현재의 자리인 김포시로 옮겨지면서 장릉(章陵)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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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릉의 봉분은 병풍석과 난간석 없이 봉분 주위를 둘러막는 조금 낮은 듯한 호석(護石)만을 두르고 있으며,

이는 왕위를 오르지 않은 왕의 아버지(대원군)의 묘제를 따른 것이라고 한다.

 

능 앞에는 각각 혼유석 1좌씩을 두었고,

중간에 장명등을 세웠으며 능 남쪽 제23단에 문무석 1쌍씩을 마주 세워놓았다.

 

 

인헌왕후(仁獻王后)는 구사맹(具思孟)의 딸로 1590년에 정원군과 혼인하여 연주군부인(連珠郡夫人)으로 봉해졌으며

1623년에 아들이 보위에 오르면서 연주부부인(連珠府夫人)이 되었으며 궁호를 계운궁(啓運宮)이라 하였다.

 

연주부부인(連珠府夫人)1626(인조 4)4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 김포 성산 언덕에 예장하였다가,

1632년에 인헌왕후로 추존되었으며 원종의 능인 현재 자리로 천장(遷葬)하였다.

 

옥경원 비석 받침돌

정원대원군의 무덤인 홍경원(興慶園)을 남양주시에서 육경원으로 옮겨 와 두 원을 합하여 홍경원으로 하였다.

 

홍경원을 1632년에 장릉으로 격상하면서 종전에 있던 석물들 중 사용하지 않은 일부를 능 좌측 언덕에 묻었는데,

세월이 지나면서 비석 받침돌이 지상으로 노출되어 이 자리로 옮겨서 보관하는 것이라고 한다.

 

 

재실(齋室)은 왕릉의 수호와 관리를 위하여 능참봉(陵參奉)이 상주하던 곳으로,

제례 시에는 제관들이 머물면서 제사에 관련된 전반적인 준비를 하던 공간이다.

 

이 건물은 원종(元宗)과 인헌왕후(仁獻王后)의 제향을 준비하던 재실이며,

능참봉(陵參奉)의 집무실인 재실을 비롯하여 향과 축문을 보관하는 안향청(安香廳),

제기를 보관하는 제기고(祭器庫)와 그 외 부속공간인 행랑(行廊)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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