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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서울

태조비 신덕왕후 강씨(神德王后 康氏)의 능, 정릉(貞陵)

by kangdante 2023. 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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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성북구 정릉동에 위치한 정릉(貞陵)

조선 태조 이성계의 두 번째 아내이면서 조선 최초의 왕비인 신덕왕후 강씨(神德王后 康氏)의 능()이다.

 

정릉은 1409(태종 9)에 처음 조성한 후 1669(현종 10)에 다시 조성한 단릉 형식이며

능침에는 문석인석마장명등혼유석망주석석양석호를 배치하였다.

 

 

정릉은 일반 조선왕릉과 달리 직선축이 아닌 자연 지형에 맞추어 절선축으로 조성되었으며,

능침아래에는 홍살문정자각수복방수라간비각 등이 있다.

 

정릉의 장명등과 혼유석을 받치는 고석만이 조성 당시의 것이고 나머지 석물들은 현종 대에 다시 조성하였으며,

장명등은 고려 공민왕릉의 양식을 따른 것으로 조선시대 능역의 가장 오래된 석물인 동시에 예술적 가치가 높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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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덕왕후가 1396(태조 5)에 세상을 떠나자 태조는 취현방(현 영국대사관 근처)에 정릉을 조성하고

훗날 자신이 묻힐 자리까지 함께 조성하였으나,

태종이 즉위한 후 태조가 세상을 떠나면서 정릉은 푸대접 받기 시작하였다.

 

태종은 정릉의 능역 100보 근처까지 집을 짓는 것을 허락하였고

정릉이 도성 안에 있다는 이유로 사을한산(현 정릉)으로 천장(遷葬)하고

묘의 봉분을 완전히 깎아 무덤의 흔적을 남기지 말도록 하였다.

 

 

정릉은 그 후 청계천 광통교가 홍수에 무너지자 정릉의 석물 중 병풍석과 난간석을 광통교 복구에 사용하였고

그 밖에 목재나 석재들은 태평관을 짓는 데 쓰게 하였다.

 

민묘나 다름없었던 정릉은 260여 년이 지난 1669(현종 10)

왕릉의 상설을 갖추게 되었으며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신덕왕후는 상산부원군 강윤성(康允成)과 진산부부인 강씨의 딸로 태어났으며,

강씨(康氏) 집안은 고려의 권문세가로서 이성계의 권력 형성과 조선 건국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고 전해진다.

 

조선이 1392년에 건국되면서 태조의 향처 한씨가 이미 조선 개국 전에 세상을 떠났으므로

신덕왕후가 조선 최초로 왕비(현비)로 책봉되었으며,

1899(광무 3)에 신덕고황후(神德高皇后)로 추존되었다.

 

능에서 화재나 부정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지키는 수복이 근무하는 수복방(守僕房)

 

정릉 비각과 비문

 

 

정릉 재실은 왕릉의 수호와 관리를 위하여 능참봉이 상주하던 곳으로

제례 시에는 제관들이 머물면서 제사에 관련된 제반 준비를 하던 공간이다.

 

재실에는 능참봉의 집무실인 재실, 제기를 보관하던 제기고, 그 외 부속공간인 행랑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2012년에 발굴 조사하여 2014년에 복원하였다고 한다.

 

제향을 준비하고 왕릉을 관리하던 영(令)과 참봉이 사용하던 재실(齋室)

 

제기를 보관하는 제기고(祭器庫)

 

행랑(行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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