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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서울

청계천을 가로지르는 여러 다리

by kangdante 2023. 3.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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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서린동에 위치한 청계천(淸溪川)은 광화문 동아일보사 청계천광장에서부터 성동구 신답철교에 이르기까지

5.8km의 구간이 복원되어 산책로와 녹지 등이 설치된 하천이다.

 

청계천은 북악산인왕산의 부근에서 발원하여 시가지 중심부를 동쪽으로 흘러 중랑천으로 흘러드는 하천이었으나,

현재의 청계천 물은 지류에서 유입된 물이 아니고

자양취수장에서 취수한 한강물과 도심의 지하철역 부근의 지하수를 이용하여 조달하고 있다고 한다.

 

 

모전교(毛廛橋)는 과일가게인 모전(毛廛) 근처의 다리라고 하여 붙인 명칭이며,

조선시대에 이 다리 근처에 모전이 있었으므로 모전교가 되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였던 1937년에 조선총독부에서 청계천을 복개하면서 이 다리를 없애버렸으나,

2005년에 청계천을 복원하면서 현재의 자리에 새 교량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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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통교(廣通橋)는 청계천의 다리 중 규모가 가장 큰 다리로 광통방(廣通坊)의 다리라는 뜻이며

돌다리나 벽돌에 화려한 무늬가 새겨져 있는 돌들을 볼 수 있는데 이들이 정릉의 석물들이다.

 

신덕왕후 신씨에 대한 태종의 반감을 확인할 수 있는 유물이며,

이 다리는 복원한 청계천 너비와 광통교 길이가 맞지 않아서 원래 자리에서 상류쪽에 복원하고

광통교 남쪽에 다리를 덧대었다고 한다.

 

 

광교(廣橋)는 청계천 복원공사 때 교통문제로 인해 원래 광통교 자리 지은 다리이며,

광교 이름은 광통교의 준말이다.

 

이 다리는 2005년에 준공되었으며 북쪽으로는 우정국, 남쪽으로는 남대문로와 이어진다.

 

 

장통교(長通橋)는 조선시대 청계천 본류와 남산 기슭에서 흘러오는 물줄기와 합쳐졌던 곳으로

여기서 큰 물줄기가 되어 길게 이어진다는 뜻으로 붙어진 이름이라고 한다.

 

장통교는 장교를 비롯하여 장창교장찻골다리장추교장추골다리 등으로도 불렸으며,

조선시대 장통교 남쪽의 장교동 일대와 북쪽의 관철동 일대는 지금도 많은 상가들이 즐비하게 있다.

 

 

삼일교는 탑골공원의 서쪽 도로 이름이 삼일로이므로 다리 이름도 여기서 유래하였으며,

1919년 탑골공원에서 3.1운동이 시작되었기에 이를 기념하는 뜻으로 탑골공원의 서쪽 도로 이름을 삼일로라 하였다.

 

 

수표교는 청계천의 수량을 측정하던 수표가 위치하여 서울의 홍수에 대비하던 다리이며,

1406(태종 6)에 처음 세워졌으며,

민속놀이로 정월 대보름날 밤 서울 사람들이 밤을 세워 즐긴 답교놀이가 광통교와 수표교에서 있었다.

 

수표교는 1958년 청계천 복개공사 때 북악산 밑의 신영동으로 이전되었다가

1965년에 장충단공원 안의 남소문동천으로 다시 옮겨져 현재에 이르고 있다.

 

 

세운교는 부근의 세운상가의 이름을 따서 명명하였으며

원래 1967년 세운상가 건립 때 교량을 만들었는데 청계천을 복원하면서 철거하였다.

 

그 후 2010년 중반에 서울시에서 도시재생사업의 일환으로 2017년에 다시 세운교를 재건하였다.

 

 

관수교(觀水橋)는 청계천 준설사업을 담당하였던 관청인 준천사(濬川司)

청계천의 수위를 관측하였다는 데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일제는 1924년에 총독부 관리들이 편하게 오갈 수 있도록 왜성대와 창덕궁을 직선으로 연결하는 도로를 개통하고

청계천을 통과하는 다리를 놓은 것이 관수교라고 한다.

 

 

배오개 다리는 다리 정북쪽의 배오개 고개 이름에서 유래하였으며

고개 입구에는 배나무가 여러 그루 심어져 있어 배나무고개배고개 하다가 음이 변하여 배오개가 되었다고 한다.

 

일설에는 옛날 이 고개에 숲이 울창하여 짐승과 도깨비가 많이 나와 도깨비고개로도 불렀으며,

넘기가 무서워 백 명을 모아야 넘는다고 해서 백고개백재백채 하다가

배고개가 되었다가 다시 배오개가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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