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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경기도

철종(哲宗)이 어린 시절 살았던 잠저(潛邸), 용흥궁(龍興宮)

by kangdante 2024. 8.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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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관청리에 위치한 용흥궁(龍興宮)는 철종(哲宗)이 왕위에 오르기 전 19세까지 살았던 집이며, 원래는 초가집이었으나 철종이 보위에 오르고 4년 만에 기와집으로 짓고 궁이라는 명칭을 붙였다고 한다.

 

용흥궁(龍興宮)이라는 이름은 철종이 왕이 된 후 왕의 잠저(潛邸)로서 '용이 흥하게 되었다' 하여 지어진 것이라고 하며, 1995년에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0호로 지정되었다.

 

정면 6칸 측면 2칸의 ㄱ자형 팔작지붕의 사랑채

 

 

용흥궁의 안채는 지붕 옆면이 여덟 팔()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이고, 지붕을 받치면서 장식을 겸하는 공포가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으로 정면 7칸 측면 5칸이다.

 

사랑채는 정면 6칸 측면 2칸의 자형 팔작지붕 홑처마 주심포의 구조로 되어 있고, 그 외 우물대문과 후문이 있으며, 철종이 살았던 옛 집임을 표시하는 정방형으로 정면과 측면이 각각 2.5m 넓이 약 6의 비석과 비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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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종이 왕위에 오르게 되자 1853(철종 4)에 강화유수 정기세(鄭基世)가 현재와 같은 건물을 세우고 용흥궁이라 이름지었으며, 그 뒤 1903년에 이재순(李載純)이 중건하였고 그 후 세월이 흘러 많이 허물어진 것을 1974년에 크게 보수하였다고 한다.

 

용흥궁 내에는 내전 1외전 1별전 1동 등의 건물과 잠저구기비각(潛邸舊基碑閣) 등이 있으며, 이 궁의 건물은 창덕궁의 연경당(演慶堂)낙선재(樂善齋)와 같이 살림집의 유형에 따라 조형되어 있다.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의 안채

 

철종(哲宗)의 어렸을 때 이름은 이원범(李元範)이었으며, 전계대원군(全溪大院君)의 셋째 아들로 어머니는 용성부대부인(龍城府大夫人) 염씨(廉氏)이고, 정조의 아우인 은언군(恩彦君)의 손자이다.

 

철종은 1844(헌종 10) 회평군(懷平君)의 옥사에 연루되어 가족과 함께 강화도에 유배되어 학문과는 거리가 먼 농부로 살았으며, 당시 영조의 혈손으로는 헌종과 원범 두 사람뿐이었다.

 

철종이 살았던 옛 집임을 표시하는 잠저구기비각(潛邸舊基碑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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