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파주시 문산읍 사목리에 자리한 황희선생 유적지는 조선 초기 재상이며 청백리였던 황희정승의 얼이 깃든 곳으로, 말년에 관직을 사양하고 고향에 돌아와 갈매기를 벗 삼아 지낸 곳이라고 한다.
유적지 내에는 황희선생의 영정을 모신 방촌 영당(厖村 影堂)을 비롯하여 방천기념관ㆍ월헌사(月軒嗣)ㆍ경모재(景慕齋)ㆍ황희선생 동상, 그리고 반구정(伴鷗亭)과 앙지대(仰止臺) 등 정자가 있다.
방촌 영당(厖村 影堂)은 황희선생의 유업을 기리기 위하여 후손과 유림들이 본가의 터에 영당을 짓고 제사를 지내는 곳으로, 6.25전쟁으로 전부 불탄 것을 1962년에 후손들이 복원하였으며 경기도 기념물 제29호이다.
영당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초익공 양식(初翼工 樣式) 맞배지붕이며, 영당 내부에는 중앙에 감실을 두고 그 안에 영정을 모셨으며 건물주위로는 방형의 담장을 둘렀다.
월헌사(月軒嗣)는 항희선생의 고손(高孫)인 소양공(昭襄公) 월헌(月軒) 황맹(黃孟) 선생의 신위를 모신 부조묘(不祧廟)이다.
황맹(黃孟)선생은 황희 선생의 증손인 부사(府使) 황관(黃瓘)의 아들로 문장과 글씨가 뛰어나 당대에 이름이 높았고 그의 죽지사(竹枝詞)는 명나라에서 격찬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방촌 황희선생은 고려 말에서 세종에 이르기까지 장기간 임금을 보필하고 89세로 장수하였던 청백리 정승이었으며, 말년에 관직을 사양하고 이곳 고향에 돌아와 갈매기를 벗 삼아 지냈다고 한다.
황희정승은 좌천ㆍ파직ㆍ귀양살이 등을 당하면서도 60년간의 관직생활을 통해 법률과 제도를 정비하고 세종대왕의 한글창제를 돕는 등 태평성대를 이룩하는 위업을 달성하였다.
반구정(伴鷗亭)은 임진강이 바라보이는 언덕에 자리한 정자로, 예로부터 이곳에는 갈매기가 많이 모여 들었다고 하며 황희 선생이 관직에서 물러나 여생을 보내던 곳이라고 한다.
반구정(伴鷗亭)이라는 이름은 갈매기를 벗 삼는 정자라는 의미로 지었다고 하며, 반구정은 낙하진(洛河津)에 인접해 있어 원래는 낙하정(洛河停)이라고도 하였다고 한다.
반구정이 자리한 곳은 임진강이 내려다보이는 기암절벽과 더불어 푸른 물이 아래로 굽이쳐 흐르고 송림이 울창하여 아름다운 풍경을 자아내었다고 한다.
정자 내부에 조선 중기의 문신이며 학자인 미수(眉叟) 허목(許穆) 선생이 지은 반구정기(伴鷗亭記) 현판이 걸려 있으며, 당시의 정자 주변 풍경이 잘 묘사되어 있다.
황희 선생이 돌아가신 후에도 그를 추모하는 8도의 유림들이 유적지로 수호하여 왔으나 6.25전쟁 때 모두 불타 버렸다고 한다.
그 뒤 이 일대의 후손들이 부분적으로 정자를 복원해 오다가 1967년에 개축을 하고 1975년에는 단청과 축대를 손보았으며, 1998년에 유적지 정화사업의 일환으로 반구정과 앙지대를 목조건물로 새롭게 개축하였다고 한다.
앙지대(仰止臺)는 반구정이 원래 위치했던 자리에 세워진 정자이며, 1915년에 반구정을 현재의 위치에 옮겨 지으면서 그 자리에 황희 선생의 유덕을 우러르는 마음을 담아 육각정을 지었다고 한다.
앙지대 상량문에는 ‘오직 선(善)만을 보배로 여기고 다른 마음이 없는 한 신하가 있어 온 백성이 우뚝하게 솟은 산처럼 모두 쳐다본다. 아름답구나! 앙지대라는 이름은 시경(詩經)의 호인(好人)이라는 뜻을 취했다.’ 라고 적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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