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 강화군 불은면 덕성리에 자리한 덕진진(德津鎭)은 고려시대에 강화해협을 지키는 외성의 요충지였으며, 1666년(현종 7년)에는 국방력 강화를 위해 조선시대 수군절도사가 있던 수영(水營)에 속하였다.
덕진진은 병자호란 뒤에는 강화도를 보호하기 위한 방법으로 내성ㆍ외성ㆍ돈대ㆍ진보 등의 12진보(鎭堡) 중 하나였으며, 현재 덕진진은 문루(門樓)인 공조루(拱潮樓)를 비롯하여 덕진돈대(墩臺)ㆍ덕진포대(砲臺)ㆍ성곽 등을 복원하였으며 사적 제226호이다.
덕진진은 1679년(숙종 5년)에는 용두돈대와 덕진돈대를 거느리고 덕진포대와 남장포대를 관할함으로써 강화해협에서 가장 강력한 포대였다고 한다.
덕진진은 1871년 신미양요 때 미국의 아시아 함대와 치열한 포격전 끝에 미국함대를 격퇴시켰으나, 성첩(城堞)과 문루(門樓)가 모두 파괴되고 문루지(門樓址)만 남게 되었으나, 1976년에 돈대와 성곽을 보수하고 정면 3칸 측면 2칸의 홍예문(虹霓門) 문루(門樓)인 공조루(拱潮樓)도 다시 세웠다
덕진돈대(德津墩臺)는 덕진진에 소속된 2개 돈대 중 하나이며, 북쪽의 광성보와 남쪽의 초지진 중간에 위하여 강화수로의 가장 중요한 요새지이기도 하였다고 한다.
덕진돈대는 1872년 신미양요(辛未洋擾) 당시 미국 함대와 48시간 동안 치열할 포격전을 전개하였으며, 이 때 파괴되었던 것을 1977년에 복원하였다.
남장포대(南障砲臺)는 덕진진에 소속된 포대로 조선시대 강화의 8개 포대 중 하나였으며, 대포 10문이 설치되어 있었다고 한다.
남장포대는 신미양요 때 미국 아시아함대와 맹렬한 포격전을 전개하였던 곳이며, 성첩(城堞)과 시설물은 이때 모두 파괴되었으나 1977년에 다시 복원하였다.
덕진돈대(德津墩臺)는 덕진진에 소속된 2개 돈대 중 하나이며, 북쪽의 광성보와 남쪽의 초지진 중간에 위하여 강화수로의 가장 중요한 요새지이기도 하였다고 한다.
덕진돈대는 1872년 신미양요(辛未洋擾) 당시 미국 함대와 48시간 동안 치열할 포격전을 전개하였으며, 이 때 파괴되었던 것을 1977년에 복원하였다.
해문방수비(海門防守碑)는 1867년에 대원군의 명으로 덕진첨사가 건립한 높이 147cm 너비 54.5cm 두께 28cm 비이며, 개화기에 외국선박의 출입을 통제하겠다는 척화의 의지를 담고 있다고 한다.
비(碑)에는 ‘해문방수타국선신물과(海門防守他國船愼勿過)’라고 새겨졌으며, ‘바다의 문을 막고 지켜서 다른 나라의 배가 지나가지 못하도록 하라.’는 의미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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