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 정동에 위치한 덕수궁(德壽宮)은 조선 5대 궁궐 중에서 규모가 가장 작고 전통 목조건축과 서양식 석조건축이 함께 남아있는 조선왕조의 궁궐 가운데 독특한 형태로 남아 있는 궁궐이다.
덕수궁 자리는 원래 월산대군(성종의 형)의 사가(私家)였으나 임진왜란이 끝난 후 궁궐이 모두 불에 타고 없자, 한양으로 돌아온 선조가 임시 거처로 사용하면서 1593년(선조 26년)부터 행궁(行宮)이 되었다.
덕수궁 전경을 한 눈에 바라볼 수 있는 정동전망대는 서울시청 서소문청사 13층에 위치한 전망대이며, 덕수궁과 서울시청 건물을 한 눈에 바라보며 여유롭게 커피 한잔을 즐길 수 있는 전망대 겸 카페이다.
정동전망대에는 카페 창문틀에는 멀리 보이는 곳이 어떤 건물인지 설명해 주는 사진이 있고, 벽면에는 정동의 옛 모습을 볼 수 있는 사진들도 전시되어 있어 정동의 옛 모습을 볼 수도 있으며, 이용시간은 평일 09:00~21:00이고 주말 및 공휴일은 09:00~18:00까지이다.
덕수궁 궁내에는 덕수궁 정전(正殿)이었던 중화전(中和殿)을 비롯하여 서양식의 대규모 석조건물 석조전(石造殿), 덕홍전(德弘殿)ㆍ함녕전(咸寧殿)ㆍ정관헌(靜觀軒), 석어당(昔御堂)ㆍ즉조당(卽祚堂)ㆍ준명당(浚明堂) 등 세 건물, 그리고 최근에 복원된 돈덕전(惇德殿) 등의 건물이 있다.
덕수궁은 원래 경운궁(慶運宮)으로 불리었으나 고종이 1907년 왕위를 순종에게 물려준 뒤에 이곳에서 계속 머물게 되면서 고종의 장수(長壽)를 빈다는 의미로 덕수궁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덕수궁(德壽宮)은 구한말에는 정치적 혼란의 주 무대였으며 아픈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였으며, 고종이 러시아공관에서 옮겨오면서 다시 왕궁으로 사용되었는데 이때부터 비로소 궁궐다운 건물들을 갖추게 되었다고 하며 사적 제124호이다.
덕수궁에는 특히 대한제국 고종의 연회장이면서 외교 접견실로 사용되었던 돈덕전(惇德殿)이 일제에 의해 철거된 지 100여 년 만에 최근에 복원되어 재개관되었다.
중화문(中和門)은 중화전(中和殿)의 정문(正門)으로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이고, 지붕은 팔작지붕으로 공포 양식은 중화전과 같이 조선 후기 수법을 가진 다포 양식을 따르고 있다.
중화문에서 중화전까지 가는 길에는 삼도(三道)라 불리는 세 갈래 길이 있으며, 그 가운데 가장 넓고 단이 높은 길이 왕이 가마를 타고 지나던 어도(御道)이며, 어도 좌우로는 문무백관이 서는 위치를 표시한 품계석(品階石)이 나열되어 있다.
광명문(光明門)은 고종이 기거하던 함녕전(咸寧殿)으로 들어가는 문으로 대한제국 시절에 건립되었던 문이라고 한다.
일제 때 덕수궁이 훼손되면서 광명문 좌우에 있던 행각들이 철거되면서 1930년대에 중화문 서남쪽으로 옮겨졌고, 그 후 2018년에 덕수궁 권역의 복원을 진행하면서 광명문도 원래의 자리에 돌아오게 되었다.
중화전(中和殿)은 앞면 5칸 옆면 4칸 규모의 덕수궁(德壽宮)의 중심 건물이며 왕이 하례(賀禮)를 받거나 국가 행사를 거행하던 곳으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중화전은 1902년(광무 6년)에 지었으나 1904년에 불에 타고 지금의 건물은 1906년에 다시 지은 건물로써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궁궐 건축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고 한다.
덕홍전(德弘殿)은 외국 사신을 접견할 목적으로 사용하였으며, 외관은 전통식이지만 내부는 서양식으로 꾸몄다.
덕홍전 자리는 원래 황후의 침전을 대신하여 명성황후의 신주를 모신 경효전이었으나 1904년에 화재로 타 없어지고 그 자리에 덕홍전을 지었다고 전해진다.
함녕전(咸寧殿)은 고종이 침전으로 사용하던 공간으로, 1897년(광무 1년)에 건축되어 1904년(광무 8년) 화재로 소실되었으나 같은 해 12월에 중건되었으며 1919년 1월에 이곳에서 고종이 사망하였다.
함녕전은 정면 9칸 측면 4칸의 팔작지붕으로 평면은 ㄱ자형으로 되어 있으며, 그 중심이 되는 방의 평면은 중앙에 대청을 두고 좌우에 온돌방과 또 그 옆으로 누마루를 두었고, 이들 전면과 후면에는 툇마루와 온돌방을 두었다.
즉조당(卽祚堂) 일원은 임진왜란 때 선조가 거처했던 전각들을 보존한 곳으로, 덕수궁의 본래 이름이었던 경운궁(慶運宮)의 정전은 즉조당(卽祚堂)이었으며, 고종이 대한제국의 황제가 되면서 1902년에 즉조당 앞에 새로 중층 건물을 지어 중화전이라 하였다.
현재의 석어당(昔御堂)ㆍ즉조당(卽祚堂)ㆍ준명당(浚明堂) 세 건물은 1904년 덕수궁 대화재 때 불에 탄 것을 같은 해에 다시 지은 것이라 한다.
석어당(昔御堂)은 현존 유일한 목조 2층 집으로 단청을 입히지 않아 소박한 살림집 같으며, 1623년에 대부분의 전각과 땅을 원 주인에게 돌려주었으나 두 건물만은 보존하여 경운궁의 상징으로 삼았다고 한다.
석어당(昔御堂)은 현존 유일한 목조 2층 집으로 단청을 입히지 않아 소박한 살림집 같으며, 1623년에 대부분의 전각과 땅을 원 주인에게 돌려주었으나 이 두 건물만은 보존하여 경운궁의 상징으로 삼았다고 한다.
즉조당(卽祚堂)은 광해군과 인조가 왕위에 오른 곳이고 석어당(昔御堂)은 선조가 거처하다 승하한 곳이며, 준명당(浚明堂)은 고종이 업무를 보던 편전으로 즉조당과 복도로 연결되어 있다.
즉조당은 광해군과 인조가 왕위에 오른 곳이고 석어당(昔御堂)은 선조가 거처하다 승하한 곳이며, 준명당(浚明堂)은 고종이 업무를 보던 편전으로 즉조당과 복도로 연결되어 있다.
정관헌(靜觀軒)은 대한제국 시절 고종(高宗)이 다과를 들거나 외교사절단을 맞아 연회를 여는 등의 목적으로 지은 건축물이다.
정관헌은 팔작지붕 등 전통적 요소와 서양적 요소가 절충된 특이한 건물로서 근대 서양식 건축의 도입을 보여주는 건물로 주목된다고 한다.
돈덕전(惇德殿)은 석조전의 뒤에 있는 건물로 최근에 복원되었으며, 돈덕(惇德)의 뜻은 서경(書經)의 순전(舜典)에서 유래한 것으로 ‘덕(德) 있는 이를 도탑게(惇) 하여 어진 이를 믿는다”를 의미한다고 한다.
돈덕전은 원래의 석조가 아닌 철골로 복원되었으며, 건물 내에는 근대 조명기구 특별전 '모던라이트, 대한제국 황실 조명'을 전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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