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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서울

외적의 침입을 막은 충신의 묘역, 충숙공 이상길 묘역(忠肅公 李尙吉 墓域)

by kangdante 2025. 12.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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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노원구 하계동에 위치한 충숙공 이상길 묘역(忠肅公 李尙吉 墓域)은 임진왜란병자호란 때 침입한 외적을 맞아 싸운 공조판서를 지낸 충신의 묘역이다.

 

이곳 묘역은 예전에는 충숙 이공 신도비라고 불렀으나 2008년에 충숙공 이상길 묘역(忠肅公 李尙吉 墓域)으로 이름이 바뀌었으며, 서울시 유형문화유산 제70호로 지정되어 있다.

 

 

동천재(東川齋)는 충숙공 이상길 묘역의 재실(齋室)이며, 묘역과 충영각 사당을 관리하고 제사를 준비하는 공간으로 구조는 팔작지붕을 지닌 건물이며 그 뒤쪽으로 이상길의 영정을 모신 충영각(忠影閣)이 있다.

 

 

 

 

충숙공 이상길의 영정(影幀)80세 때 도화서의 화가 김명국(金命國)이 그린 두 장이 현재 남아 있으며, 영정 중의 하나는 국립전주박물관에 보존하고 있으며 보물 제792호로 지정되어 있다.

 

다른 하나는 이곳 충영각(忠影閣)에 모셔져 있는데 서울시 유형문화유산 제69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영정은 가로 93세로 185의 크기이고 의자에 앉은 모습을 그렸다.

 

 

충숙공 이상길(忠肅公 李尙吉)의 자는 사우(士祐)이고 호는 만사(晩沙)동천(東川)이며, 본관은 벽진(碧珍)으로 조선 초 1556(명종 11)에 태어나 20세에 진사 시험에 합격하고 30세 때 1585(선조 18)에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랐다.

 

이상길은 정유재란(1597) 때 왜군이 다시 쳐들어오자 남원에서 싸웠으며, 1636(인조 14) 12월에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인조의 명령으로 종묘와 사직단의 신주(神主)를 모시는 영위사(迎慰使)가 되어 81세의 나이로 강화도에 들어갔다.

 

 

16371월에 청나라 군대가 바다를 건너 강화도에 상륙하여 왕비왕자왕족들 200여 명을 체포하자, 이상길은 126일에 아들 이경에게 뒷일을 부탁한 뒤 스스로 목을 매어 자결하였다.

 

전쟁이 끝난 후에 인조(仁祖)는 문서로서 세상을 떠난 충숙공 이상길을 널리 표창하고, 그의 충절을 기려 충숙공(忠肅公)’이라는 시호를 내렸으며 죽은 뒤의 벼슬을 좌의정으로 높였다.

 

 

충숙공 이상길 신도비는 1661(현종 2)에 임진왜란과 이괄의 난 등 선조~인조 임금의 여러 사건에서 올곧은 행동을 보였던 충숙공 이상길의 성품공적 등을 기록하고 있으며, 이상길 무덤 남동쪽의 비각(碑閣) 안에 세워져 있다.

 

이상길 신도비는 연꽃무늬를 새긴 사각의 받침돌 위에 비신(碑身)을 세우고 지붕돌을 얹은 모습으로, 조선 중기의 양식이 그대로 나타나 있다.

 

 

이곳 묘역에는 충숙공 이상길과 그의 부인인 경주 이씨의 합장묘뿐만 아니라 이상길의 아들 자헌대부 지충추부사 이경(李坰)의 묘, 부친 찬성공 이희선과 이상길의 형 평사공 이상철 등 여러 기의 무덤이 함께 있다.

 

묘역에는 봉분 외에도 신도비묘표혼유석상석향로석망주석 등의 석물이 잘 보존되어 있으며, 신도비 비문은 성균관 좨주(祭酒)였던 송시열(宋時烈)이 짓고 글씨는 송준길(宋浚吉), 그리고 머리 전서(頭篆)는 김수항(金壽恒)이 썼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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