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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서울

마애보살상과 금동보살상 보물 2점을 보유한 사찰, 보타사(普陀寺)

by kangdante 2026. 5.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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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성북구 개운사길에 위치한 보타사(普陀寺)는 대한불교 조계종 조계사의 말사인 개운사(開雲寺)의 부속 암자이며, 고려시대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되는 유서 깊은 도심 속 사찰이다.

 

보타사는 규모가 작지만 국가지정 보물 2점을 보유하고 있어 문화재적 가치가 매우 높은 사찰이며, 보타사 이름은 관세음보살이 상주하는 '보타락가산'에서 따온 명칭이며 과거에는 칠성암으로 불렸다고 전해진다.

 

 

보타사 마애보살좌상(普陀寺 磨崖菩薩坐像)은 전체적으로 넓은 어깨에 양감이 강조되어 신체가 당당한 모습이며, 머리는 보관을 쓰고 천의를 걸친 채 왼손은 결가부좌한 다리 아래쪽으로 내리고 오른손은 어깨 높이까지 들어 올렸다.

 

얼굴은 이목구비가 뚜렷한 편으로 좌우로 길게 뻗은 눈, 초승달 모양의 눈썹, 높게 솟은 콧등 등이 특징적이며, 보관은 높은 편인데 좌우로 관대가 돌출되고 보관 장식이 아래쪽으로 길게 늘어진 모습이다.

 

 

마애보살좌상은 사찰 후방을 감싼 자연 암벽의 곡면을 그대로 살려 조각되었으며, 불신 전체에 하얀색 호분(백색 가루)이 두껍게 칠해져 있어 관음보살의 청정함을 시각적으로 강조하고, 머리 뒤편에서 어깨 위로 흘러내리는 검은색 보발(머리카락)이 호분과 강한 대비를 이룬다.

 

마애보살좌상과 관련한 기록은 현재 전하는 것이 없지만 마애보살좌상 왼편에 새긴 신중패(神衆牌)가 조성시기 추정에 참고가 되며, 서울 옥천암 마애보살좌상과 함께 여말선초(麗末鮮初)에 유행한 보살상의 한 형식을 보여주는 뛰어난 예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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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타사에는 대웅전 뒤편 5m 높이의 거대한 암벽에 정교하게 조각된 고려시대 마애보살좌상(보물 제1828)과 관음전 내부에 봉안되어 있는 조선 초기의 불상인 금동보살좌상(보물 제1818)을 보유하고 있다.

 

보타사는 과거 비구니 스님들의 숙소 및 중앙승가대학교의 비구니 수행관으로 사용되었던 역사가 있었으며, 경내에는 대원암(大圓庵)을 비롯하여 관음전삼성각종무소 등의 건물이 있으며, 현재 마애보살좌상 주변 석축 정비공사로 인해 주변이 어수선하기도 하다.

 

 

보타사 금동보살좌상(普陀寺 金銅菩薩坐像)은 고려 후기 양식을 계승하여 조선 전기에 조성된 귀족적이고 세련된 불상이며. 조선 초기에 중앙에서 유행했던 높은 수준의 불교 조각 기술을 잘 보여주고 있다.

 

금동보살좌상은 어깨에 천의를 숄이나 스카프처럼 걸치고 그 자락 중 하나를 아래로 수직으로 늘어뜨렸으며 이는 조선 초기 보살상의 전형적인 착의법이라고 하며, 크기는 높이 81.5cm 무릎 폭 30.5cm로 조선 전기 금동보살상 중에서는 매우 큰 규모에 속하며, 이로 인해 당시 왕실이나 높은 지배층이 발원하여 조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금동보살좌상의 하체 자세는 왼쪽 다리를 아래로 내려 바닥을 딛고 오른쪽 다리는 무릎을 세워 비스듬히 앉아 있는 유희좌(遊戱座)의 독특한 모습이며, 상체는 세운 오른쪽 무릎 위에 오른팔을 자연스럽게 얹고 있으며, 왼손은 바닥이나 대좌를 짚고 있는 편안한 자세이다.

 

얼굴은 사각형에 가까우면서도 통통한 뺨을 가졌으며 반쯤 감은 눈, 오뚝한 콧날, 작고 아름다운 입술 등에서 부드럽고 여성적인 면모가 강하게 나타나며, 원통형 보관 정면에 아미타불을 상징하는 화불(化佛) 장식이 정교하게 새겨져 있어, 이 보살상이 관음보살임을 증명하고 있다.

 

 

대원암(大圓庵)은 보타사와 함께 개운사(開雲寺)의 부속 암자이며, 한국 근현대 불교 교육과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격을 지닌 역사적 장소라고 한다.

 

대원암은 1926년에 근대 불교계의 스승이면서 대강백인 석전 박한영 스님이 이곳에 주석하며 '불교전문강원'을 개설하였다고 하며, 이후 한국 불교의 근대적 교육 불사와 진보적인 불교 운동을 이끌어온 중심지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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