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국내여행/서울

불교 개혁과 교육의 근원지, 개운사(開運寺)

by kangdante 2026. 5. 25.
728x90

 

서울 성북구 안암동의 안암산 자락에 자리하고 있는 개운사(開運寺)는 사찰 규모는 크지 않지만, 한국 근현대 불교사에서 불교개혁과 교육의 근원지로 매우 중요한 역사적 가치를 지닌 사찰이라고 한다.

 

개운사가 처음 세워진 것은 조선 초 1396(태조 5)에 왕사(王師)인 무학대사가 동대문 밖 안암산 기슭(현재 고려대학교 이공대학 부근)에 절을 짓고 영도사(永導寺)라고 불렸다고 알려져 있다.

 

 

그 후 1779(정조 3)에 정조의 후궁 원빈(元嬪) 홍씨가 세상을 떠나자 영도사 자리에 묘소를 정하고 명인원(明仁園)을 세우게 되었으며, 이에 인파당(人波堂) 축홍(竺洪) 스님이 영도사를 동쪽으로 몇 리 떨어진 현재 자리에 절을 옮겨지었다고 전해진다.

 

한편으로는 사기(寺記) 문헌에는 1730(영조 6)에 영도사가 이전한 것으로 나타나며. 영도사가 개운사로 이름을 바꾼 시기는 확실하지 않다고 한다.

 

728x90

 

 

개운사는 조선말 1873(고종 10)에 절에 명부전이 세워지고 7년 후인 1880년에는 이벽송(李碧松) 대사가 대웅전을 중건하는 등 그 후 여러 차례의 중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개운사는 20세기 이후에 한국 교육 불사와 불교의 진보적인 운동을 주도해 왔으며, 1926년 근대 불교의 대석학이었던 박한영 스님이 머물렀고, 이 절의 암자인 대원암에 탄허(呑虛) 스님이 머물면서 역경(譯經) 사업에 종사하였다.

 

 

 

개운사에는 현재 대웅전을 비롯하여 대각루칠성각범종각독성전 등의 건물이 있으며, 관음전으로 향하는 길목에는 인자한 미소를 띠고 있는 커다란 석조관세음보살 입상과 3층 석탑이 세워져 있다.

 

석조 입상은 관세음보살의 가장 대표적인 상징물인 정병(淨甈)을 두 손으로 꼭 쥐고 있으며, 왼손으로는 병 아래를 받치고 오른손으로는 병의 목을 잡고 있는 형태로 정병 속 감로수로 중생의 고통을 씻겨주고 소원을 들어준다는 자비의 의미를 담고 있다.

 

 

대웅전(大雄殿)은 개운사의 중심 법당으로 정면 5칸 측면 3칸 규모의 팔작지붕 건물이며, 전통 가람의 중후하고 안정적인 비례미를 보여주고 있다.

 

대웅전 건물은 1880(고종 17)에 이벽송 스님에 의해 대대적으로 중건된 기록이 있고, 현재 건물은 1993년에 외형을 보수·정비하여 새로 낙성한 것이라고 한다.

 

 

대웅전에 봉안된 목조아미타여래좌상(木造阿彌陀如來坐像)은 나무로 조각된 뒤 금칠을 한 118cm 크기의 불상으로 현존하는 고려 후기 불상 중 가장 오래된 불상 중 하나라고 하며, 보물 제1649호로 지정되어 있다.

 

대웅전에는 중앙 아미타불을 기준으로 좌측에는 약사여래불과 보현보살이 있고, 우측에는 석가모니불과 문수보살 등 오존불이 함께 모셔져 있어 사찰의 법력을 더하고 있다.

 

 

관음전(觀音殿)은 중생의 고뇌를 보듬어주는 자비의 화신인 관세음보살을 주불로 모시고 있으며, 원래 전각 이름은 미타전(彌陀殿)이었다고 한다.

 

관음전 안에는 수많은 손과 눈으로 모든 중생의 괴로움을 살피고 구제한다는 천수천안관세음보살(千手千眼觀世音菩薩)상이 장엄하게 봉안되어 있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