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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서울

전통 한옥 오촌댁(梧村宅)과 문인석 등 다양한 석물, 국립민속박물관 야외전시장

by kangdante 2026. 8.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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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세종로에 위치한 국립민속박물관은 전통사회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우리 민족 고유의 생활양식풍속민속유물 등 한국인의 삶의 모습과 문화를 상설전시와 기획전시로 운영하고 있다.

 

국립민속박물관 야외전시장은 한국의 전통 생활 문화와 근현대 거리를 직접 걸으며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며, 조선시대 전통 가옥부터 효자정려(孝子旌閭) 효자각과 효자문, 그리고 문인석 등 다양한 석물까지 시대를 넘나드는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오촌댁(梧村宅)은 조선 후기 경상도 지방의 중산층 계층의 전통 한옥의 특징을 고스란히 간직한 역사적인 가옥이며, 상량문에 기록된 건립연대가 1848년에 지어진 것으로 알 수 있다.

 

원래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원구1리에 위치해 있었으나, 2010년 영양 남씨 난고종파로부터 가옥을 기증받아 국립민속박물관 앞마당으로 부재를 하나하나 해체하여 원형 그대로 이전복원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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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촌댁 건물은 가옥의 중앙에 마당이 있는 ''자 형태로 외부 출입은 뒤쪽을 제외한 세 방향이 모두 가능하며, 뒷마당에는 장독대를 두었고 오른쪽 마당에는 디딜방앗간과 우물화장실 등을 배치하였다.

 

'오촌댁'이라는 이름은 영양 남씨 집안의 남용진(南龍鎭)이 경북 영덕군 창수면 오촌리 출신의 재령 이씨(載寧 李氏) 여인과 혼인하면서 아내의 출신지 이름을 따서 붙인 택호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오촌댁은 정면 4칸 측면 5칸으로 구성된 ''자형 평면 구조에 지붕은 팔작지붕과 맞배지붕 형식이 혼합되어 있으며, 가옥 중앙에 아담한 정사각형 안마당을 두고 건물이 사방을 둘러싸고 있는 경상도 지역 민가의 전형적인 형태이다.

 

오촌댁은 안방상방사랑방문간방 등 총 4개의 방과 안마루(대청)사랑마루로 이루어져 있으며, 사랑방은 규모는 작지만 다락과 벽장이 있는 구조이며 지붕의 용마루가 끊어지지 않고 하나로 연결되어 안채와 사랑채가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있는 구조이다.

 

 

오촌댁은 일반적인 한옥과 달리 암키와 위에 수키와를 얹은 후 마구리에 흙을 발라 마감하는 작업을 생략했는데, 이는 영덕을 비롯한 경상도 해당 지역의 독특한 전통 건축 방식이라고 한다.

 

오촌댁은 2010년 복원을 위해 건물을 해체하는 과정에서 도광이습팔년무신삼월이일신시립주상량동일시(道光貳拾捌䄵戊申三月二日申時立柱上樑同日時)’ 상량문이 발견되면서 1848(조선 헌종 14) 32일에 지어진 건물임이 정확하게 밝혀졌다.

 

 

효자각과 효자문은 조선시대 국가에서 효자에게 내린 표창인 효자정려(孝子旌閭)를 본관이 태인(泰仁)인 허권(許權)에게 내린 것을 기념한 효자비(孝子碑)와 그 보호 건물이며, 그는 부모가 병환에 누웠을 때 지극정성으로 간호하였으며 부모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유교적 예법에 따라 삼년상을 치르는 등 동네의 귀감이 되는 효행을 실천하였다고 한다.

 

효자비와 효자문을 통해 효를 중시했던 당시의 사회상과 건축기술공예문화를 엿볼 수 있으며, 이 건물은 전북 부안군 보안면 월천리의 허권 후손의 살림집 안에 있었던 것을 2008년에 이곳으로 옮겼다고 한다.

 

 

원래 이 시설은 전라북도 부안군 보안면 월천리에 있던 태인 허씨 후손의 실제 살림집 내부에 보존되어 있었으나 후손들의 기증을 거쳐 2008년에 현재의 국립민속박물관 앞마당 야외전시장으로 원형 그대로 이전복원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기둥 일부가 보수되었고 관람객들이 알아볼 수 있도록 주변에 기와 담장을 둘러 고유의 영역을 표시하였다.

 

효자각은 화려한 단청과 함께 연꽃 봉우리봉황 등이 조각되어 있으며, 효자문에는 孝子門이라고 쓴 현판과 호랑이, 그리고 매화난초국화대나무(梅蘭菊竹)가 그려져 있다.

 

 

국립민속박물관 야외전시장 잔디밭에는 수십 기의 석상들이 무리를 이루고 있으며, 이들은 주로 조선시대 왕릉이나 사대부의 무덤 앞에 세워져 죽은 자의 영혼을 지키던 석물들이라고 한다.

 

석물 중에는 쥐호랑이 등 십이지(十二支)의 얼굴에 사람의 몸을 한 환조 석상들이 도열해 있는데, 전통 신앙에서 십이지신은 하루 24시간과 일 년 12달을 지키는 방위와 시간의 신장이라고 한다.

 

 

문인석(文人石)은 머리에 복건이나 금관을 쓰고 손에는 임금을 뵐 때 들던 홀()을 쥔 문관의 모습이며, 석상의 크기에 따라 묘 주인의 사회적 신분과 품계를 나타냈다고 한다.

 

무인석(武人石)은 갑옷을 입고 장검을 짚고 서 있는 무관의 모습이며, 무덤에 다가오는 잡귀나 사악한 기운을 무력으로 물리치는 수호자 역할을 담당했기 때문에 문인석보다 상대적으로 눈을 부릅뜨고 늠름한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연자방아는 평평한 원형의 돌판 위에 다시 둥근 돌을 얹어 이것을 소나 말로 돌려 곡식을 찧는 도정(搗精)기구로, 연자매돌방아돌방애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손으로 윗돌을 돌려 곡식을 가는 맷돌과는 달리 연자방아는 가축의 힘에 의해 윗돌과 아랫돌이 수직을 이뤄 돌아가기 때문에 일의 능률이 휠씬 높으며, 연자방아를 만들려면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마을사람들이 공동으로 장만해 함께 사용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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