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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경기도

핵심 군사 요새이면서 강화도의 관문, 강화 갑곶돈대(甲串墩臺)

by kangdante 2026. 8.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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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해안동로에 위치한 갑곶돈대(甲串墩臺)는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수도 한양의 외곽을 방어하던 핵심 군사 요새이면서 강화도의 관문이었으며, 1679년에 완성된 48돈대 가운데 하나이다.

 

갑곶돈대는 제물진과 강화 외성의 일부로써 망해돈대제승돈대염주돈대와 함께 제물진의 관할 하에 있었으며, 포좌가 있는 본래의 갑곶돈대는 옛 강화대교 입구 북쪽 언덕에 있었다고 한다.

 

 

갑곶돈대에서는 강화전쟁박물관을 비롯하여 비석군홍이포이섭정갑곶리 탱자나무 등 볼거리도 많으며. 사적 제306호로 지정되어 있다.

 

돈대(墩臺)는 해안가나 접경지역에 돌이나 흙으로 쌓은 소규모 관측방어시설로, 조선시대 강화도 해안에 돌로 쌓은 돈대 53개가 설치된 것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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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곶돈대는 1232(고려 고종 19)에 강화도로 도읍을 옮긴 후 몽골군의 침입으로부터 강화해협(염하)을 지키는 요새로, 정식 형태의 돈대는 아니지만 해안선을 따라 목책을 세우고 군사를 배치하는 등 1차원적인 방어 진지로 처음 사용되었다고 한다.

 

갑곶돈대는 그 후 병자호란 이후 강화도 방어 체계가 강화되면서 1679(숙종 5)에 병조판서 김석주의 기획 하에 승군과 어영군 등 13,000여 명을 동원하여 40~80일 만에 완성한 48개 돈대 중 하나라고 한다.

 

 

갑곶돈대는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 극동함대 600여 명이 처음으로 상륙하여 강화성을 점령했던 가슴 아픈 격전의 현장이었으며, 1875년에는 이곳에 포대가 설치되기도 하였다.

 

갑곶돈대 내부에는 과거 바다를 통해 침입하는 외적의 선박을 격퇴하기 위해 사용했던 소포홍이포 등 조선 시대의 포들이 전시되어 있으며, '갑곶' 명칭의 유래로는 삼국시대에 강화를 부르던 옛 지명인 '갑비고차(甲比古次)'에서 나왔다는 설이 있다.

 

 

갑곶돈대에는 조선시대 후기에 실제로 사용되었던 대포소포불랑기포 등 총 3가지 종류의 대포가 전시되어 있으며, 이 대포들은 해안 성벽을 따라 바다를 향해 배치되어 있으며 강화해협을 통해 침입하는 외적의 선박을 격퇴하는 데 사용되었다고 한다. 

 

대포(大砲)는 포구에서 화약과 포탄을 장전한 다음 뒤쪽 구멍에 점화하여 사격하는 방식으로 사정거리는 700m이며, 소포(小砲)는 포구에서 화약과 포탄을 장전한 다음 뒤쪽 구멍에 점화하여 사격하는 방식으로 사정거리는 300m이며, 불랑기(佛狼機)는 탄약과 화약을 장전하는 자포와 이를 발사하는 모포가 분리되어 연속 사격이 가능한 무기이다.

 

 

강화 갑곶돈대 비석군은 강화도 전역에 흩어져 있던 조선시대 비석들을 한자리에 모아 조성한 총 67기의 비석 모임이며, 비석들은 단순한 돌비석이 아니라 조선시대 강화도의 행정역사 그리고 독특한 생활 규제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중요한 역사 자료라고 한다.

 

비석군들은 조선시대 강화 지역에 부임하여 선정을 베푼 유수(留守)판관(判官)경력(經歷)군수(郡守) 등의 공덕을 기리는 영세불망비 및 선정비 등을 비롯하여 경고문 비석삼충사적비(三忠事蹟碑)하마비(下馬碑) 등 다양하다.

 

 

세계금속활자발상중흥기념비는 고려시대 강화도(강도시대)에서 간행된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 책인 상정고금예문의 발간을 기념하고 호국 정신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이라고 한다.

 

갑곶돈대 관람시간은 09:00~18:00(17:00 입장마감)까지 연중무휴(전쟁박물관은 매주 월요일, 11, 설날 및 추석 당일 휴무)이며, 관람료는 어른 1,200원 어린이청소년군인 900, 강화군민유아노인(70세 이상) 등은 무료이다.

 

 

이섭정(利涉亭)2층 규모의 팔각 정자로 고려시대 몽골과의 외교 협상에서 우리 측이 이롭게 되기를 염원하는 마음을 담아 처음 지어졌으며, 강화도를 찾거나 떠나는 외국 사신들을 맞이하고 환송하던 외교 관문 역할을 했었다고 한다.

 

원래 옛 진해루 옆에 있었으나 무너진 채 방치되어 있던 것을 1398(태조 7)에 강화부사 이성(李晟)이 현재의 위치에 다시 세웠으나 오랜 세월을 거치며 다시 소실되었고, 1976년 강화 국방유적 복원 정화사업의 일환으로 2층 팔각정 형태로 새롭게 중건되었다고 한다.

 

 

천연기념물 탱자나무는 강화외성 성벽 주변에는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천연 철조망 역할을 하도록 가시가 날카로운 탱자나무를 심었다고 하며, 당시 격전 속에서도 살아남은 수령 400년의 탱자나무가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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