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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경기도

서오릉(西五陵)에 자리한 경릉(敬陵)ㆍ홍릉(弘陵)ㆍ순창원(順昌園)

by kangdante 2019. 8.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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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용두동에 자리한 서오릉(西五陵)은 명릉(明陵)창릉(昌陵)경릉(敬陵)익릉(翼陵)

홍릉(弘陵)의 오릉(五陵)과 순창원대빈묘 등이 있는 조선 왕릉이다.

 

조선 왕릉은 죽은 자가 머무는 성()의 공간과 산 자가 있는 속()의 공간이 만나는 곳으로,

그 공간적 성격에 따라 능침공간제향공간진입공간으로 나눈다고 한다.

 

 

경릉(敬陵)은 추존 왕 덕종(德宗)과 소혜왕후(昭惠王后)의 능으로,

덕종(德宗)은 세조의 맏아들로 1455(세조 1)에 세자로 책봉되었으나 왕위에 오르기 전 20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나고

둘째 아들이 성종(成宗)이 되면서 덕종으로 추존되었다.

 

 

덕종 능은 조선 왕릉 중 봉분의 지름이 가장 크지만 당초 대군 묘로 조성되었기 때문에

봉분에 병풍석은 물론 난간석망주석석수무인석이 없이 매우 간소하며 이후 추존 왕릉의 표본이 된다.

 

반면 소혜왕후의 능은 추존 왕 덕종과는 달리 생전에 왕비로 책봉되었기 때문에 왕릉 형식을 갖추고 있으며,

열두 칸의 난간석을 비롯하여 모든 석물이 있으며 석양석호와 문인석무인석도 있다.

 

 

경릉은 동원이강(同原異岡)의 능제를 따르고 있지만, 일반적으로 정자각 쪽에서 능을 바라보았을 때

왼쪽에 왕의 능을, 오른쪽에 왕후의 능을 조성하는데 경릉은 그 반대로 오른쪽에 왕을 모시고 있다.

 

조선 왕릉 가운데 유일하게 왕후가 왕보다 높은 좌상 자리를 차지한 것은

세상을 떠났을 때의 신분의 차이와 그 당시 인수대비의 위상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소혜왕후는 정난공신 서원부원군 한확(韓確)의 딸이며, 세조가 왕위에 오르자 1455년에 세자빈으로 책봉되었으며,

아들이 성종으로 즉위하고 1475년에 의경세자가 덕종으로 추존되자 인수대비(仁粹大妃)가 되었다.

 

인수대비는 성품이 총명하고 학식이 깊어 부녀자들의 예의범절을 가르치는 내훈(內訓)을 책으로 펴내고

한문 불경을 한글로 풀어쓰기도 하였으나 며느리인 폐비 윤씨(廢妃 尹氏)와는 갈등이 심하였다.

 

 

홍릉(弘陵)은 영조의 첫 번째 왕비인 정성왕후(貞聖王后)의 능으로,

홍릉의 전체적인 배치는 쌍릉 형식이나 정자각 쪽에서 바라보았을 때 능의 왼쪽이 비어 있다.

 

이는 영조가 생전에 정성왕후와 함께 묻히려고 자신의 능 자리를 미리 만들어 비워두도록 했기 때문이라고 하며,

조선 왕릉 42기 중 유일하게 왕의 유택이 비어있는 능이기도 하다.

영조의 능은 현재 동구릉 내에 있는 원릉(元陵)에 계비인 정순왕후와 함께 잠들어 있다.

 

 

일설에 의하면, 정조가 자신의 아버지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두어 죽게 한 할아버지에 대한 미움으로

영조를 홍릉에 모시지 않고 동구릉 영릉 터에 안장했다는 일화도 전해지기도 하며,

또 다른 일화는 영조의 계비 정순왕후가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이용하기 위해 비워놓았다는 설도 있다.

 

 

정성왕후는 달성부원군 서종제의 딸이며, 13세에 1704년 숙종의 둘째 아들 연잉군과 결혼하였고

연잉군이 영조로 등극하자 왕비가 되었다.

 

조선 역대 왕비 중 중전 재임기간이 약 33년으로 가장 길었으며 영조 사이에서 자식은 없었으며

66세에 창덕궁에서 세상을 떠났다.

 

 

순창원(順昌園)은 명종(明宗)의 원자인 순회세자(順懷世子)와 공회빈 윤씨(恭懷嬪 尹氏)의 합장원(合葬園)이며,

순회세자는 7세에 세자로 책봉되었으나 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13세에 세상을 떠났다.

 

공회빈은 1561년에 왕세자빈이 되었으나 남편이 일찍 세상을 떠나 왕비가 되지 못하고 1592년에 세상을 떠났으며,

임진왜란의 혼란 속에 시신을 끝내 수습하지 못하고

임진왜란이 끝난 후 선조(宣祖)는 죽은 사람의 위패로 신주(神主)를 만들어 순회세자와 합장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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