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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서울

궁궐로서의 면모를 잃은 경희궁(慶熙宮)

by kangdante 2020. 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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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신문로에 위치한 경희궁(慶熙宮)1617(광해군 9)에 창건하였으며,

창건 당시에는 경덕궁(慶德宮)으로 불렸다가 1760(영조 36)에 경희궁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경희궁은 조선시대 5대 궁궐중 하나로, 처음 창건 때는 이궁(離宮)으로 지어졌으나

궁의 규모가 크고 여러 임금이 이 궁에서 정사를 보았기 때문에 동궐인 창덕궁에 대하여 서궐이라 불리기도 하였다고 한다.

 

 

경희궁은 원래 선조(宣祖)5남 정원군(定遠君)의 사저(私邸)였으나 집 근처인 색문동(塞門洞)에 왕기(王氣)가 서려 있다는 말에 따라,

이를 눌러 없애기 위해 별궁을 짓고 경덕궁으로 불렸다고 전해진다.

 

창덕궁과 창경궁이 복구된 뒤에도 경덕궁에는 여러 왕들이 머물렀고, 이따금 왕의 즉위식이 거행되기도 하는 등

인조효종철종 등 10여 명의 왕이 살았지만 그 기간이 짧았으며 거의 빈 궁궐로 있었다고 한다.

 

 

숭정전(崇政殿)은 경희궁의 정전(正殿)으로 경희궁 건설 초기인 1618(광해군 10)에 건립되었으며,

국왕이 신하들과 조회를 하거나 궁중 연회사신접대 등 공식행사가 행해졌던 곳이다.

 

특히 경종정조헌종 등은 이곳에서 즉위식을 거행하였으며,

일제가 경희궁을 훼손하면서 일본인 사찰에 팔았으며 현 위치의 숭정전은 복원된 것이다.

 

 

영조는 경덕궁(慶德宮)의 이름이 원종(元宗)의 시호인 경덕(敬德)과 발음이 같다는 이유로 1760(영조 36)에 경덕궁을 경희궁로 바꾸었으며,

영조는 이곳에서 즉위를 했으나 몇 달만 이곳에서 지냈고 거의 빈 궁궐로 남았다고 한다.

 

경희궁에는 회상전흥정당집경당숭정전흥화문 등의 건축물이 있었으나

경술국치 뒤 건물들은 없어지고 그 터에 경성중학교가 세워졌으며,

그 후 1994년에 정전인 숭정전의 복원작업 등 몇몇의 전각들을 복원하였지만 대부분의 전각들은 사라지고 궁궐로서의 웅장한 면모를 잃고 말았다.

 

 

자정전(資政殿)은 경희궁의 편전(便殿)으로 국왕이 신하들과 회의를 하거나 경연을 여는 등 공무를 수행하던 곳으로,

1617~1620(광해군 9~12)사이에 건립되었다고 한다.

 

숙종이 승하하였을 때는 빈전(殯殿)으로 사용되었으며 선왕들의 어진이나 위패를 임시로 보관하기도 하였으며,

일제가 헐어 버렸던 것을 서궐도안에 따라 현재의 건물을 복원하였다고 한다.

 

 

 

태령전(泰寧殿)은 영조의 어진(御眞)을 보관하던 곳으로 본래는 특별한 용도가 정해지지 않은 건물이었으나,

영조의 어진이 그려지자 1744(영조 20)에 이곳을 중수하여 보관하였다고 한다.

 

일제에 의해 흔적도 없이 파괴되었지만 2000년 서궐도안(西闕圖案)에 따라 정면 5칸 측면 2칸의 건물로 복원하였으며,

현판은 석봉 한호(韓濩)의 글씨를 집자(集字)하여 만들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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