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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두천5

자유수호평화박물관으로 가는 설경(雪景) 경기도 동두천시 평화로에 위치한 자유수호평화박물관은 6. 25전쟁 참전 22개국 유엔군 활약상과 관련유물 및 자료를 전시하고 있는 박물관으로, 국민의 안보교육장으로 활용하기 위해 건립하였다고 한다. 자유수호평화박물관까지는 소요산역에서 도보로 1.3km 거리 남짓하지만, 하얀 설경과 더불어 나름의 운치를 즐기며 산책삼아 걸을 수 있어 좋다. 동두천에는 자유수호평화박물관을 비롯하여 박물관 인근에는 소요산 국립공원ㆍ이태조 행궁지, 경기북부어린이 박물관 등이 있으며, 그밖에 다양한 관광문화명소가 많다. 자유수호평화박물관 입구에 자리한 야외 공연장이 있는 이름을 알 수없는 작은 공원이지만, 하얀 눈꽃이 핀 풍경이 포근하면서도 아름다워 보인다. 자유수호평화박물관 건물 앞에 건립한 참전모형비는 6. 25전쟁 당시 우.. 2024. 1. 31.
6. 25전쟁 참전 유엔군 관련자료 전시, 자유수호평화박물관 경기도 동두천시 평화로에 위치한 자유수호평화박물관은 6. 25전쟁 때 피와 생명을 바치신 국군과 유엔군의 고귀한 희생과 정신을 기리고자 6. 25전쟁 참전 22개국 유엔군 활약상과 관련유물 및 자료를 전시하고 있는 박물관이다. 자유수호평화박물관은 6. 25전쟁의 참상과 나라를 지키기 위해 희생하신 국군과 유엔군의 고귀한 정신을 기리고 전 세계에 널리 알려 민족상잔의 비극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하고 나아가 온 국민의 안보 교육장으로 활용하기 위해 건립하였다고 한다. 자유수호평화박물관 전시실은 3개 층에 나누어 전시하고 있으며, 1층에는 해방부터 6. 25전쟁 후까지 시대적 사실을 12개 도자기 부조로 표현한 이미지 부조와 전쟁으로부터 자유와 평화를 지키기 위한 병사의 역동적인 몸짓과 세계 평화를 표현한 박.. 2024. 1. 30.
자유수호평화박물관 야외전시장 경기도 동두천시 평화로에 위치한 자유수호평화박물관은 6. 25전쟁에 대한 이해와 자유와 평화를 수호하기 위하여, 유엔참전 16개 전투지원국과 6개 의료지원국에 대한 전시실과 야외 전시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자유수호평화박물관 야외 전시장은 3,747㎡ 규모로, 6.25전쟁부터 최근까지 군에서 사용하였던 T33-A 훈련비행기 및 M48 A2C 탱크 등 총 15점의 대형 장비를 전시하고 있다. T33-A 훈련기는 미국 록히드사에서 개발한 훈련기로 ‘슈팅스타’라는 애칭을 가지고 있으며, 1944년에 최초로 비행하였다. 한국 공군은 조종사 양성을 위해 1955년에 T33-A 10대를 최초 도입하였으며 이후 총 60대를 도입하여 고등비행훈련용으로 활용하였으며 1956년부터 1959년까지 공군 에어쇼 팀의 주력 기종.. 2024. 1. 29.
원효대사의 자취가 깃든 소요산(逍遙山) 경기도 동두천시 상봉암동에 위치한 소요산(逍遙山)은 포천시 신북면과 걸쳐 있는 산으로, 경기도의 소금강(小金剛)이라고 할 만큼 경치가 아름다운 산이라 할 수 있다. 소요산은 원효대사의 자취가 깃든 산이기도 하며, 계절마다 진달래ㆍ단풍ㆍ폭포 등 꽃과 단풍이 절경을 이루며, 소요산 이름은 서화담ㆍ양사언ㆍ매월당이 자주 소요하였다고 하여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소요산 요석공원은 신라의 고승 원효대사의 부인이었던 요석공주와 인연이 깊은데서 유래되었다고 하며, 요석공주와 인연을 맺은 후 원효는 파계승이 되었다고 한다. 원효는 이곳 소요산에 머물면서 다시 수행에 전념하였다고 하며, 요석공주는 아들 설총을 데리고 와서 별궁을 짓고 살면서 수도하는 원효대사를 향해 조석으로 예배를 올렸다고 한다. 태조 행궁지는 이성계가 .. 2023. 3. 24.
원효대사가 창건한 유서 깊은 사찰, 자재암(自在庵) 경기도 동두천시 상봉암동의 소요산 기슭에 자리한 자재암(自在庵)은 654년(신라 무열왕 1년) 원효대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해지는 유서 깊은 사찰이며, 대한불교조계종 봉선사(奉先寺)의 말사라고 한다. 창건 이후의 연혁은 자세히 알 수 없으나 고려시대에 들어와서 974년(고려 광종 25년)에 각규대사(覺圭大師)가 태조의 명으로 중창하고 소요사라 하였으며, 1153년(고려 의종 7년)에는 화재로 소실된 것을 각령(覺玲)이 대웅전과 요사만을 복구하여 명맥만 이어왔다고 한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도 사찰에 대한 구체적인 연혁이 전해지지 않으나 조선 초까지만 해도 자재암은 태조의 원당으로 왕실의 비호를 받아오다가 어느 시기엔가 폐허가 되다시피 하여 겨우 명맥만 유지해 온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조선후기 들어서는 18.. 2023. 3.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