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정희왕후4

조선초 전국에서 가장 규모가 컸었던 사찰, 회암사(檜巖寺) 경기도 양주시 회암동에 위치한 회암사(檜巖寺)는 인도에서 원(元)를 거쳐 고려에 들어와 1326년(고려 충숙왕 13년)부터 1328년까지 머물렀던 지공(指空)스님이 창건한 사찰로 전해지나 정확한 창건연대와 창건주는 알 수 없다고 전해진다. 회암사는 조선 초기까지만 해도 전국에서 규모가 가장 컸었던 절이었으며, 1424년(세종 6년)의 기록을 보면 이 절에는 250명의 승려가 있었고 사찰규모가 1만여 평에 이르렀다고 한다. 회암사는 1566년(명종 21년) 이후 불교를 배척하는 유생들의 방화로 불타고 사세(寺勢)가 기우러져 폐사되었으며 1821년(순조 21년)에 지공(指空)ㆍ나옹(懶翁)ㆍ무학(無學) 등 세 승려의 부도(浮屠)와 비(碑)를 중수하면서, 회암사 옛터에서 500m 위쪽에 작은 절을 짓고 회암사의.. 2022. 8. 22.
세조(世祖)와 정희왕후(貞熹王后)의 능, 남양주 광릉(光陵)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주엽산 자락의 아름다운 자연 숲에 자리한 광릉(光陵)은 조선 세조(世祖)와 정희왕후(貞熹王后) 윤씨(尹氏)의 능이다. 광릉은 중앙에 정자각이 있고 그 뒤 좌우 언덕에 능이 있는 동원이강(同原異岡)형식으로 이러한 형식은 광릉이 최초라고 하며, 다른 능과는 달리 참도(參道)와 배위(拜位)가 없는 것도 광릉이 유일하다고 한다. 광릉은 세조의 유언에 따라 석실(石室) 대신 왕릉을 만드는 비용과 인원을 줄이는 회격(灰隔)으로 현궁(玄宮)을 만들고 병풍석을 생략하는 등 검소하게 조성하였다. 조선 전기의 왕실의례를 정리한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에는 조선 초 왕릉의 석실(石室) 조성과정이 기록되어 있으며, 조선 후기 장례예절을 정리한 국조상례보편(國朝喪禮補編)에는 현재의 시멘트와 비슷한 회격(灰.. 2019. 10. 22.
선왕(세조)을 받든다는 의미를 지닌 남양주 봉선사(奉先寺)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부평리에 위치한 봉선사(奉先寺)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25교구 본사이며 969년(고려 광종20년)에 법인국사(法印國師) 탄문(坦文)이 운악산 자락에 운악사(雲岳寺)라는 이름으로 처음 창건하였다고 한다. 지금의 봉선사로 이름을 바꾼 것은 세조(世祖)의 비 정희왕후(貞熹王后)가 1469년(예종 1년)에 세조의 능침을 운악산에 모시고, 세조의 명복을 비는 사찰로 삼아 89칸으로 중창하고 ‘선왕을 받든다.’는 뜻으로 봉선사(奉先寺)로 하였다고 한다. 큰법당 앞에 있는 3층 석탑은 1975년에 운허(耘虛)스님이 스리랑카에서 모셔온 부처님 사리 1과를 봉안한 탑이라 한다. 봉선사 대종(大鐘)은 1469년 정희왕후가 봉선사를 다시 지을 때 세조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주조한 것으로, 우리나라에 남.. 2019. 10. 21.
세조(世組)의 명복을 빌었던 사찰, 봉선사(奉先寺)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부평리에 위치한 봉선사(奉先寺)는 969년(고려 광종 20년)에 법인국사(法印國師) 탄문(坦文)이 운악산 자락에 운악사(雲岳寺)라는 이름으로 처음 창건하였다고 한다. 그 후 1469년(조선 예종 1년)에 세조(世祖)의 비 정희왕후(貞熹王后)가 세조의 능침을 운악산에 모시고 광릉(光陵)이라 하고, 세조의 명복을 비는 사찰로 삼아 중창하고 ‘선왕을 받든다’는 뜻으로 봉선사(奉先寺)로 이름을 바뀌었다고 한다. 경내 건물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으로 소실된 것을 1749년에 중수하였으나 다시 6·25전쟁으로 완전히 소실되었다가, 1959년 범종각 복원을 시작으로 운경(雲鏡)ㆍ운하당(雲霞堂)을 차례로 세우고 1970년대에 큰법당과 영각(靈閣)을 세워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경내에는 현.. 2018. 10. 8.